한국소비자원 산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쿠팡에 피해자 1인당 1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쿠팡에 역대 최대 규모인 6246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나온 배상 권고안이다. 쿠팡이 권고안을 수용하면 최대 약 3조7000억원을 배상하게 될 전망이다.
◇“10만원 상당 현금·캐시 지급하라”
분쟁조정위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50명이 신청한 집단분쟁조정 사건에서 쿠팡이 신청인에게 각각 현금 10만원 또는 쿠팡캐시 1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분쟁조정위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분쟁조정위는 쿠팡 회원의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뿐 아니라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주문내역 등 사생활과 밀접한 정보까지 유출됐다는 점을 배상 책임의 주요 근거로 들었다. 해커가 지난해 4월께부터 11월께까지 상당 기간 정보를 빼내고 일부 고객에게 직접 유출 사실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낸 만큼 악용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판단했다.
쿠팡은 추가 유출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분쟁조정위는 이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쿠팡 서비스를 이용해온 소비자들이 개인정보 유출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배상액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법원이 통상 10만원 안팎의 위자료를 인정해온 점과 유출 정보가 일상생활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해 정했다.
쿠팡과 신청인들은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수락 여부를 분쟁조정위에 알려야 한다.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으면 수락한 것으로 보며 양측이 모두 받아들이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대규모 단체소송으로 갈 수도
조 단위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쟁조정위의 권고를 쿠팡이 수용할지 주목된다. 분쟁조정위는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사업자에게 보상계획서 제출을 권고할 수 있다. 정부 조사 기준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약 3756만 건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배상 규모는 약 3조7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가 쿠팡에 역대 최대인 62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이번 권고까지 받아들이면 재무 부담이 커진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서는 SK텔레콤 등 다른 기업의 전례처럼 쿠팡도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분쟁조정위 결정은 당사자 양측이 수락해야 효력이 발생해 쿠팡이 거부하면 배상을 강제할 수 없다.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건 직후인 지난해 12월 회원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등 자체 보상에 나섰다는 점을 들어 추가 배상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에 대해 쿠팡은 “조정안을 받아본 뒤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대규모 단체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SK텔레콤은 유심 무상 교체와 고객 감사 패키지 등 자발적인 피해 구제 노력이 조정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분쟁조정위의 권고를 거부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제재가 과징금에 그치지 않고 집단분쟁조정을 통한 피해 구제로까지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는 지난해 8월 SK텔레콤에 1347억원, 지난 30일에는 KT에 53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사건마다 피해 규모와 배상 기준, 과징금 수준이 제각각인 점은 문제”라며 “일관된 배상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 간 형평성을 고려한 과징금 부과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