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삼성, SK그룹이 최근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호남의 반도체 클러스터, 충청 AI 데이터센터, 영남 피지컬AI산업으로 10년간 최대 200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 계획이 제시됐다.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특정 지역 홀대론은 물론, 시장 논리에 반하는 정부 주도의 투자 의사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홀대론의 중심에 있는 경북도가 정책금융을 활용한 능동적 투자 모델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경북도는 지방정부의 성장방식을 대규모 국비 사업 유치를 중심으로 한 보조금, 융자 중심의 구조에서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공동투자 기반 성장경제로 대전환하고 있다.
◇국비 의존 중심의 성장 방식 탈피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가 정책금융을 활용한 기업투자와 4대 파운드리 건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국비에만 의존하거나 대기업을 기다리는 수동적 투자유치에서 벗어나 정책금융을 활용해 기업과 함께 투자해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수탁생산공장(파운드리)까지 짓겠다”며 “사업 규모는 1조5000억원으로 구미, 포항, 안동 등 경북산업 거점에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북도의 접근방식은 혁신적이다. 양 부지사는 “지방정부가 국비에만 의존하거나 기업이 와주길 기다리는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 지방이 지닌 입지 강점에 더해 투자구조를 설계하고 자금조달까지 중개하는 적극적 역할을 맡으면 투자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금융을 활용한 4대 파운드리 건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양 부지사는 “대기업은 시장을 분석하고 투자계획을 세우며 공급망과 시장을 관리할 역량이 충분하지만, 지역의 중견 기업은 독자적으로 투자계획을 세우고 시장에서 자금조달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지방정부가 공동투자자로 참여해 투자구조 설계와 인허가 지원 같은 규제를 해소해주고 지역 기업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대기업이 투자자, 수요자로 참여하는 ‘공동투자 성장모델’”이라고 설명했다.
4대 파운드리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안동 CDMO(의약품 위탁생산) 사업이다. 산업용햄프 규제자유특구의 사업모델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규모 스마트팜을 이용한 대마 재배와 원료 의약품 생산 그리고 완제 의약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산업용햄프 전주기 생산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총사업비 2000억원 이상이 투입될 예정이며 산업용햄프 규제자유특구에서 성장한 기업이 리딩 투자자가 되고 스마트팜 재배단지와 완제 의약품 생산라인을 구축하는데 업계 최상위권의 기업이 지분투자와 직접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구조다. 안동 바이오산업단지에 SK바이오사이언스 이후 ‘산업용햄프 시장의 TSMC’라 부를 수 있는 기업을 발굴 육성시킨다는 계획이다.
◇구미에는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추진
구미에는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파운드리가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는 경북도에서 자체 기획한 사업구조로 차량용 반도체에 특화된 대규모 위탁생산 공장을 세운다. 경북은 차량용 반도체의 성장률이 높은 특화시장이다. 국내 기업의 설계역량은 충분하지만, 생산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를 파고들었다.
양 부지사는 “한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에서 대수 기준으로 4.3%, 수출액 기준으로 4.6%의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보완재인 차량용 반도체는 매출액 기준 세계 점유율이 2.3%에 그쳐 해외의존도가 90% 이상”이라며 “국내 생산 역량을 확충할 정책적 당위성과 사업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구미는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가 이미 갖춰져 있고 국내 1세대 반도체 기업인 KEC, 매그나칩 같은 기업이 있어 실현 가능성도 높다. 양자 파운드리는 금융권 및 해외 투자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사업 구조화를 마쳤고 올 하반기 내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포항에는 로봇 파운드리를 추진한다. 로봇 파운드리는 산업현장의 협동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탁생산하는 공장이다. 경북도는 AI 시대에 맞춰 로봇 훈련장과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생산, 운영, 고도화 기능이 통합된 사업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투자금융주식회사도 설립
이런 구상이 가능했던 데는 지역활성화투자펀드로 시작된 비수도권 인프라 구축을 정책금융을 직접 활용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경북도는 2024년부터 지역활성화투자펀드로 구미의 청년 드림타워(근로자 기숙사), 경주 강동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포항 AI 데이터센터 등 1조5000억원이 넘는 인프라 사업을 성사시켰다. 호텔 리조트,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까지 20여 건이 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도는 경북투자금융주식회사를 설립해 기업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민선 9기 이철우 경북지사의 공약이기도 하다.
경북투자금융주식회사는 경북의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펀드를 출범시켜 기업의 스케일업과 신규 공장 증설을 지원하고 벤처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지원을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양 부지사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투자금융주식회사가 생기고 공공이 초기 리스크를 분담하면, 이후 정책금융·시중은행·민간투자가 연쇄적으로 따라붙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 지역의 첨단산업을 이끌 수 있다”며 “파운드리와 AI 인프라 같은 앵커 프로젝트의 추진력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