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감당하지 못한 빚을 공공 부문이 떠안는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취약차주의 재기를 돕는 사회 안전망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개인 부실의 처리 비용이 사회 전체로 전이되면서 재정·금융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상승기 공공 부실 급증
2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신용보증기금·서민금융진흥원 등 12개 주요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금융 부실채권은 지난해 말 44조4478억원으로 집계됐다. 2018년(28조114억원)보다 16조4364억원(58.7%) 증가했다.
코로나19 당시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과 고금리, 자영업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실채권이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코로나19 때 다른 나라보다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등 금융 지원에 크게 의존했다”며 “지원이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자영업 업황이 좋지 않아 그동안 눌려 있던 부실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실은 늘고 있지만 상각채권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다. 공공기관이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털어내는 속도가 부실채권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이는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개인금융 부실채권에서 상각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3.3%에서 지난해 16.6%로 6.7%포인트 하락했다. 상각채권 규모는 같은 기간 6조6000억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9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는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하지 않고 장부에 계속 남겨두면 캠코 매각 등 후속 정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의 채권 관리 비용이 늘고 채무자는 장기간 추심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공공기관의 부실채권이 전액 세금 손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실채권을 관리하거나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유 기관의 손실이 커지면 결국 재정 투입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 주요 재원이 정부 출연금일 때 손실이 확대되면 대부분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이 떠안은 채권 관리와 회수 부담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채무조정 이후 재기 지원해야”
공공기관의 채무조정 비중은 줄고 있다. 전체 채무조정에서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원금 감면이나 분할상환을 제공한 비중은 2018년 45.7%에서 지난해 34.6%로 낮아졌다. 지난해 말 5년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은 11조8000억원으로 전체의 26.9%에 달했다. 이 가운데 6조2000억원은 연체 기간이 10년을 넘었다. 정책보증 대출에서도 공공 부문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근로자햇살론 대위변제율은 2016년 2.2%에서 지난해 12.4%로 6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배드뱅크인 새도약기금을 통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무담보채권 16조4000억원어치를 금융회사와 공공기관에서 사들여 소각하거나 조정할 계획이다. 지난 7년간 공공기관에서 늘어난 개인금융 부실채권(16조4364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을 관리하는 비용과 추가 복지 지출까지 고려하면 장기연체자의 채무를 조정해 재기를 돕는 편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채무조정 이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취약차주가 다시 생계형 대출에 의존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단순히 빚을 덜어주고 끝내서는 안 된다”며 “채무조정과 교육·취업 프로그램을 연계해 다시 부실차주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