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파기환송심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하면서도 평가 시점은 주가가 급등하기 전인 2024년 4월로 잡았다. 주식 자체는 최 회장이 계속 보유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경영권에 미칠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거액의 현금 조달 방식에 따라 경영권 리스크가 제기될 수도 있다.

이혼과 위자료 청구는 이미 분리 확정된 상태로 이번 심리는 재산분할에만 한정됐다. 두 사람은 2017년 7월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 이후 9년째 법적 다툼을 이어왔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지난 1월 첫 변론 뒤 조정을 시도했지만 SK 주식의 성격, 분할 규모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1부(이상주 부장판사)는 이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비율은 노 관장 3분의 1, 최 회장 3분의 2로 정했다. 최 회장 명의의 SK㈜ 주식 등은 그대로 보유하게 하고 노 관장의 몫 가운데 부족한 금액을 현금으로 채우는 '대상분할' 방식을 택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이 SK그룹 경영권과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재산분할금에 지연손해금도 붙는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최 회장의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넣을지, 주식 가치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할지였다. 최 회장 측은 상속·증여로 형성된 특유재산이어서 분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혼인 기간 가사와 양육을 맡으면서 경영을 뒷받침한 만큼 분할 대상인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평가 시점을 2024년 4월16일 항소심 변론 종결일로 볼지, 지난달 26일 파기환송심 변론 종결일로 볼지에 따라서 액수도 좌우됐다.

법원은 노 관장의 가사·양육과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주식 가치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혼인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데다 부부 모두 재산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의 경영 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늘었지만 노 관장의 가사·양육, 그룹 대외 활동도 이를 뒷받침했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300억원 지원금은 노 관장의 기여나 분할 비율에 반영하지 않았다.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전에 경영권 유지나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증여한 주식 등도 분할 대상에서 뺐다.

주식 가치는 환송 전 항소심 변론이 끝난 2024년 4월16일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재판상 이혼 뒤 재산분할을 청구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주식은 자본적 성격의 자산으로 가격 변동성이 크고 상장주식은 언제든 환가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법원은 이혼 확정 뒤 주식의 처분 여부에 따른 수익이나 손해를 양측이 나누지 않는다고 해서 재산분할제도의 취지에 현저히 어긋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파기환송심이 정한 노 관장 몫 3분의 1은 2심이 적용한 35%보다 낮다. 300억원을 기여도에서 제외하면서도 혼인 기간 형성된 공동재산과 노 관장의 비금전적 기여를 상당 부분 인정한 결과다.

법원 판단은 심급마다 달라졌다.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SK 주식은 특유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2심은 2024년 5월 위자료를 20억원, 재산분할금을 1조3808억원으로 높였다.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과 노 관장의 기여가 SK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SK 주식을 공동재산에 넣은 결과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재산분할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받은 뇌물로 보이는 만큼 SK에 흘러갔더라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최 회장이 경영권 유지와 경제활동을 위해 이미 증여한 주식이나 반납한 급여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업계 안팎에서는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을 마련하기 위해 SK㈜ 주식 상당수를 처분할 경우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다만 최 회장이 SK㈜ 지분을 통해 그룹 전반을 지배하는 데다 다른 총수들과 비교해 지분율이 높지 않아 실제 주식 처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었다. 다만 대법원이 재산분할 판단을 뒤집자 이 같은 리스크를 일단 덜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파기환송심도 주식 현물 분할 대신 현금 지급을 명령해 노 관장이 직접 SK 지분을 확보하는 상황은 피했다. 다만 9440억원을 마련하는 방식에 따라 최 회장의 보유 주식과 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소송도 아직 끝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는 상태다. 최 회장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