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열일'도 지나치면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에는 기업 간 경쟁이 필수다. 어떤 이유로든 경쟁이 제한되면 상품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가 저하돼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쟁을 가로막는 제일의 적은 담합을 포함한 기업들의 반경쟁 행위다. 이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그 어느 정부보다 예리하다. 특히 담합 사건에 매우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설탕 담합에 4083억원, 밀가루 담합에 6710억원, 전분당 담합에 역대 최대인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0년 액화석유가스(LPG) 담합에 부과한 6689억원을 제외하면 이전까지 4000억원 넘는 과징금을 부과한 적이 없다. 이런 공정위의 강경한 태도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재정경제부 등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최근 공정위가 정말 ‘열일’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장경제의 주적인 반경쟁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는 공정위의 자세는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연초 쿠팡의 정보 유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소위 탈팡 운동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정보 유출 사건은 말 그대로 공정거래와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전면에 나서 동일인 지정, 영업정지,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등을 거론하며 쿠팡을 몰아붙였다. 이후 공정위는 김범석 쿠팡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으나 현재 쿠팡의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 의해 인용된 상태고, 쿠팡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심의하고 있다. 물론 정보 유출 사건의 주무 부처인 개인정보위원회에서 정보 유출로는 역대 최대인 62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정부 대응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문제는 미국 정부와 의회가 자국 기업인 쿠팡을 한국 정부가 차별적으로 대우한다는 불만을 공식적으로 표출하며 쿠팡을 넘어 한국의 플랫폼 규제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마찰이 비단 공정위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공정거래의 칼날을 정보 유출 사건에까지 들이댄 ‘열일’이 일조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의심된다.

공정위는 지난달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사건에 대한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동의의결 절차 개시 신청을 기각했다. 배민과 쿠팡이츠는 최혜 대우 요구 등을 통해 배달 플랫폼 간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해 음식점주에게 부과하는 수수료를 경쟁 수준보다 높게 책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가 이 사건 조사를 시작하자 배민과 쿠팡이츠는 최혜 대우 요구를 폐지하고 각각 3000억원과 600억원의 상생안을 마련해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시정 방안을 제시하며 사건 종결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를 기각하며 조사, 심의, 처벌로 이어지는 ‘열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물론 이 사건을 동의의결로 종결하면 더 이상 위법성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와 심의에 걸리는 1년 이상의 시간과 인력을 아낄 수 있다. 관련 매출의 6%까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대법원 확정까지 수년이 걸리면서도 정작 피해 당사자인 소상공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동의의결 개시 신청에 담긴 상생안은 즉시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금액 또한 과징금을 웃도는 수준으로 판단된다. 여러 소상공인 단체가 공정위의 기각 결정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밝힌 이유다.

기업들의 반경쟁 행위와 불공정 관행에 대한 공정위의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간 인력 부족 등으로 사건 처리가 매우 지연돼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장구조가 급속도로 변하는 플랫폼산업에서 반경쟁 행위에 대한 늑장 대처는 만시지탄일 수 있다. 반경쟁 행위로 소비자가 독점 플랫폼에 빠르게 고착돼 가는 시장에서 뒤늦은 시정 조치로 경쟁을 회복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비록 공정위가 최근 인력을 충원하고는 있다지만,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통한 경쟁 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동의의결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를 포함한 정부 부처의 ‘열일’은 이재명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바라는 바다. 하지만 과하지 않은 선에서 국가에 실익이 되고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