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부산에서 개막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행사에 개설된 대한민국관. 아래 사진은 소리꾼 김율희 씨가 개회식에서 공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9일 부산에서 개막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행사에 개설된 대한민국관. 아래 사진은 소리꾼 김율희 씨가 개회식에서 공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미술사학자와 박물관 관장, 조각가로 구성된 전대미문의 특수부대가 결성됐다. 나치가 유럽 전역에서 수탈해 은닉한 예술품과 문화유산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모뉴먼츠맨’ 얘기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오래된 유산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건 그들을 향해 냉소가 쏟아졌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실화 속에서 주인공 프랭크 스토크스 중령(조지 클루니 분)은 말한다. “한 세대의 사람들을 다 죽여도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낸다면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문화유산은 오랫동안 박물관 유리창 너머에 박제된, 고리타분한 ‘옛날 물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 모뉴먼츠맨이 전쟁 중에도 목숨을 걸었듯 문화유산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인류가 많은 시련과 비극에 맞서 곳곳에서 지켜낸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다.

최근 세계의 시선이 부산으로 쏠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이번주 부산에서 개막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키워드는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헤리티지 시프트’다. 전쟁과 기후 위기로 많은 유산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이를 지켜내야 할 유네스코는 미국이 탈퇴한 이후 극심한 기금 고갈을 겪고 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지드래곤이 이번 행사에서 글로벌 앰배서더로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최근 자신이 설립한 저스피스재단과 함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시민 모금 캠페인 ‘헤리티지 인 피스’를 시작했다. “유산을 지키는 일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며 미래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그의 말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산은 6·25전쟁 당시 피란 수도이던 도시의 서사를 국내 최초의 근현대 세계유산(2030년 목표)으로 올려놓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문화유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성당부터 기후 위기로 녹아내리는 사하라의 진흙 도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침하하고 있는 마추픽추까지. 위대한 유산은 오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찬란한 과거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 현대판 ‘모뉴먼츠맨’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무덤 위 판잣집·일터가 된 부두…부산이 쓴 '生의 기적'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전쟁기 부산의 유산들
폐허 속에서 피란민 품은 경험…인류 보편적 유산될 가치 충분

부산 아미동의 한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오래된 집의 담벼락과 계단, 주춧돌 사이로 생경한 돌이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식 이름과 한자가 새겨져 있다. 6·25전쟁 때 피란민이 일본인 공동묘지의 석축 위에 지은 판잣집, 바로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의 풍경이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조성된 이 공동묘지는 1945년 일본 패전으로 일본인이 떠난 뒤 방치돼 있었다. 6·25전쟁으로 피란민이 밀집한 부산의 절박함을 반영하듯, 일본인 묘지 위에 목구조로 세운 임시건축물은 현재까지 원형 훼손 없이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조성된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   부산시 제공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조성된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 부산시 제공
소가 있던 막사를 거주지로 삼은 동네도 있다. 우암동 소막마을이다. 이곳은 1909년 일제가 조선에서 수탈할 소를 검역하기 위해 지은 막사였다. 전쟁으로 부산 인구가 폭증하자 피란민은 소가 머물던 긴 형태의 공간을 칸칸이 나눠 방을 만들었다. 벽을 세우고, 문을 달고 우물을 파기 시작하면서 소 막사는 사람 사는 마을이 됐다. 수탈을 위한 시설이 난민의 마지막 보금자리로 바뀐 것이다.

두 주거지를 포함해 6·25전쟁 당시 1023일간 임시수도로 기능한 부산 곳곳의 11개 지역 및 공간은 현재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한국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1995년 ‘석굴암’ ‘불국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등재된 ‘반구천의 암각화’까지 모두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선사·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중심이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일제강점기 소가 있던 막사를 거주지로 삼은 ‘우암동 소막마을’.   부산시 제공
일제강점기 소가 있던 막사를 거주지로 삼은 ‘우암동 소막마을’. 부산시 제공
부산은 이 ‘첫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데 이어 2025년 11월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면서 등재 절차가 본격화됐다. 부산시는 2030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 유산은 궁궐, 사찰 같은 전통적인 기념물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정부와 시민, 피란민이 함께 만들어낸 ‘생존과 생활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기존 국내의 다른 유산과 결이 다르다. 마침 오는 29일까지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리면서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역시 세계인이 주목하는 유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월의 아픔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지만, 전쟁의 상흔을 내세워 동정과 연민에만 기대지 않는다. 부산은 전쟁 속에서도 마을을 일구고 정부 기능을 유지해 왔다. 또 유엔 참전과 국제 구호를 통해 위기에 대응한 만큼 피란민과 시민의 역동성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세계유산 등재 기준)로 제시하는 게 목표다.
지난 19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홍보대사 지드래곤이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홍보대사 지드래곤이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무대는 피란수도 시기 정부 기능이 살아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전쟁 중 대통령 관저로 쓰인 것은 물론 주요 정책 결정과 유엔 주요 인사와의 면담 등 외교활동도 이뤄졌다. 현재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평범한 근대 건축처럼 보이는 부산근현대역사관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해방 뒤 미국공보원으로 쓰였고, 6·25전쟁 발발 뒤에는 미국대사관이 들어섰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 유엔과 세계 각국을 잇는 외교·원조의 창구인 셈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곳도 있다. 부산항 제1부두는 전쟁물자와 구호물자가 들어오는 관문이자 피란민이 하루 벌이를 하던 일터였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부두 하역과 막노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도시설인 복병산 배수지는 전쟁 당시엔 물을 공급하며 도시의 생명줄이 돼준 장소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양동이와 물동이를 들고 줄을 섰다. 임시중앙청, 영도다리 등도 각각 행정·통치 기능과 생활 기반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6·25전쟁 당시 구호물자가 들어오던 부산항 제1부두.   부산시 제공
6·25전쟁 당시 구호물자가 들어오던 부산항 제1부두. 부산시 제공
11곳을 하나의 지도 위에 올려놓으면 한 도시의 전쟁사가 여실히 그려진다. 부산의 도전이 성공하면 한국의 세계유산 범위는 수백~수천 년 전의 역사에서 불과 70여 년 전의 ‘살아 있는 근현대사’로 확장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수백만 명의 피란민을 품은 도시 부산의 경험을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유산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 이번 등재 추진의 핵심이다.

피란수도 부산은 세계유산 등재 기준 가운데 3번(문화전통·문명의 증거)과 6번(중요한 사건·사상 관련 유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우슈비츠’와 ‘킬링필드’처럼 20세기의 아픈 기억을 담은 장소도 기준 6번에 근거해 등재됐다.

정소람/안혜원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