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기원 탐구, 5시간 개막작
두 개 방식 재해석한 햄릿 화제
구자하·이경성·이자람·허성임…
한국을 다룬 작품들도 눈길
①이진엽의 ‘물질’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은 이달 4~25일 약 3주간 고전의 재해석부터 동시대 사회를 향한 질문, 한국 역사와 전통, 신체 예술 확장까지 폭넓은 무대를 펼쳐 보였다. 개막작 ‘말도로르’에서 폐막을 장식한 ‘르 파 뒤 몽드’까지, 축제의 방향과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주목받은 작품들을 짚어봤다.
악을 향한 거대한 질문 던진 개막작
쥘리앵 고슬랭의 ‘말도로르’
쥘리앵 고슬랭의 ‘말도로르’는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와 칠레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 세계를 엮어 인간 내면의 폭력과 악의 기원을 탐구한 다섯 시간짜리 대작이다. 연극, 영화, 라이브 비디오를 결합한 연출로 교황청 명예극장을 압도하며 문학을 동시대 정치와 역사, 집단 폭력 문제로 확장했다.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왜 인간은 악을 반복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축제 전체를 관통한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고전을 해체한 두 개의 햄릿
티보 페르누의 ‘햄릿’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는 셰익스피어 <햄릿>을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한 두 작품이 나란히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연출가 티보 페르누의 ‘햄릿’은 단 세 명의 배우가 모든 배역을 소화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관객이 배우들과 같은 공간을 이동하며 결혼식, 연극 속 연극, 장례식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의식’을 함께 경험하는 몰입형 공연으로,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셰익스피어 비극의 본질을 끌어냈다. 영국 안무가 겸 연출가 벤 듀크의 ‘더 라스트 햄릿’도 눈길을 끌었다. “햄릿을 이제 무대에서 은퇴시켜야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과거 유산에 사로잡힌 영웅 대신 새 시대의 서사를 모색하며 고전의 현재적 의미를 되묻는다.
한국을 말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방식
구자하는 ‘하리보 김치’ 외에도 ‘쿠쿠’(사진)‘한국 연극의 역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독창적 시선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대표작 ‘쿠쿠’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청년 세대 고립을 밥솥, 전기밥솥 음성 안내 등 일상 사물을 활용해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인간 배우 대신 기계 목소리와 사물을 무대 주인공으로 내세운 형식은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자아냈고 해외 평단이 주목하는 구자하 특유의 블랙코미디 미학을 확인시켰다. ‘한국 연극의 역사’는 서구 연극이 한국 근대극에 남긴 영향, 문화적 정체성, 자기 검열 문제를 특유의 유머와 음악으로 풀어내며 “한국 연극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자람의 ‘눈, 눈, 눈’(사진)은 레프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재해석해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을 풀어낸 음악극이다. 전통 소리의 장단과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언어와 유머, 실험적인 무대 문법을 결합해 판소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임을 증명했다. 이인보의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 역시 탈춤과 굿, 연희의 몸짓을 과감하게 분해하고 재조합하며 전통 연희를 동시대 공연 언어로 새롭게 번역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뜨거워지는 세계를 감각하는 몸
허성임의 ‘1도씨’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설명과 구호가 아니라 무용수들 몸으로 감각하게 한 현대무용 작품이다. 무너지고 뒤엉키던 개별적인 신체는 점차 서로의 움직임을 익히고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한다. 강렬한 음악 및 역동적 군무를 통해 기후 불안을 행동과 연대 에너지로 전환하며 변하는 환경 앞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