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파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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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배우 박근형이었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배우 신구와 나란히 무대에 올랐던 박근형이 다시 신구를 곁에 두고 무대에 올랐다.

이번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다. 박근형이 맡은 역할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지난 8일 개막한 이 연극에서 그는 원캐스팅으로 샤일록을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잡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극에서 박근형은 방대한 대사량과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샤일록을 소화하며 극의 중심에 묵직하게 서 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상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리며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도려낼 수 있다'는 기묘한 조건을 내건 이야기다.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명작의 이야기에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사랑의 도피를 하며 전 재산을 챙겨 달아나고, 안토니오가 돈을 빌리는 계기가 되는 바사니오와 포셔의 배경과 캐릭터 역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다양한 군상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여기에 화려한 음악과 의상 역시 '알고 있지만 색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요소다. 관객까지 배우들이 나타나는 넓은 무대 연출에 다채로운 음악이 펼쳐진다.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다채로운 조명 연출과 빠른 무대 전환이 무대의 넓은 공간들까지 입체적으로 채우면서 풍성함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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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대의 중심에 박근형이 있다. 안토니오 역에는 이승주와 카이가, 포셔 역에는 수영과 원진아가, 제시카 역에는 김슬기와 김아영 등 주요 배역에 젊은 배우들이 더블캐스팅됐지만, 박근형은 홀로 샤일록을 맡아 매 공연마다 무대에 선다.

그가 연기하는 샤일록은 단순히 악인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돈에 집착하는 고리대금업자의 탐욕스러운 면이 있는가 하면,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키워온 딸 제시카를 애지중지하는 아버지의 얼굴도 있다.

박근형은 이 두 얼굴을 서로 모순되지 않게 한 몸에 담아낸다. 그 딸이 자신의 전 재산을 들고 사라졌을 때의 좌절과 분노, 자신을 비웃고 무시해온 사람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묘한 희열까지, 박근형은 샤일록이 겪는 감정의 진폭을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오간다.

관객은 어느 순간 자신이 샤일록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것이 박근형의 샤일록이 만들어내는 가장 독특한 지점이다. 악인처럼 등장한 인물이 무대의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어느새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뒤바뀌는 것.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흐릿해지는 그 순간이, 이 연극에서 박근형이 가장 빛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박근형은 1975년 극단 민예극장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50년 가까이 활동해온 배우다. '더 드레서', '고도를 기다리며' 등 굵직한 연극 무대마다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고, 무대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떤 배우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작품마다 증명해왔다.

특히 '베니스의 상인'과 박근형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1959년 학생 신분으로 올린 공연에서 샤일록을 연기한 바 있다. 무려 67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돌아온 그는 젊은 시절의 천진난만했던 연기를 넘어, 인간의 깊은 내면과 입체적인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완숙미를 증명하고 있다. 무대와 연기를 향한 그의 멈추지 않는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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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근형의 곁엔 신구가 있다.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한 무대를 나눴던 두 사람이 '베니스의 상인'에서 다시 만났다. 신구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계약을 두고 판결을 내리는 공작 역을 맡았다.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신구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장면의 온도가 달라진다. '신구와 박근형'이라는 조합이 주는 무게는, 대사의 분량과는 별개로 작동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