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까지 치솟은 여름. 직장인 김모씨(42)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가려 구상하던 괌 여행 계획을 철회했다. 항공권과 숙박비에 현지 식비까지 계산하니 네 식구의 여행 경비가 예상보다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김씨가 대신 선택한 것은 국내 호텔에서 보내는 2박3일 휴가다. 그는 “해외여행 비용의 절반 정도로 수영장과 어린이 프로그램,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어 호캉스를 예약했다”고 말했다.

고환율로 해외여행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국내 호텔이 여름휴가의 대체지로 떠오르고 있다. 객실과 조식만 묶어 팔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지역 관광, 어린이 돌봄, 공연과 미술 감상까지 결합한 ‘목적형 호캉스’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호텔이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 소비자의 여름휴가 일정을 통째로 설계하는 여행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랜드파크 켄싱턴리조트 설악밸리에서 운영 중인 몽트뢰 숲속열차. 이랜드파크 제공
이랜드파크 켄싱턴리조트 설악밸리에서 운영 중인 몽트뢰 숲속열차. 이랜드파크 제공

◇ 호텔을 거점으로 지역 여행

이랜드파크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전국 6개 지점에서 지역 관광 콘텐츠를 결합한 ‘플레이케이션’ 패키지를 운영한다. 플레이케이션은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와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을 합친 말이다. 객실에 인근 관광지 입장권이나 우대권을 묶어 호텔을 지역 여행의 거점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켄싱턴호텔 평창 패키지에는 대관령 양떼목장 입장권과 조식, 실내 수영장·사우나 이용권, 식음 바우처 등이 포함된다. 켄싱턴리조트 지리산남원은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 지리산 허브밸리, 수지미술관 등 남원의 주요 관광지 6곳을 이용할 수 있는 ‘남원 춘향 여행권’을 제공한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지역 관광지와 호텔을 연결하면 체류 시간과 지역 내 소비를 함께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 파리 대신 영종도…해외여행을 옮겨온 호텔

파라다이스시티와 프랑스 관광청이 협업해 운영하는 ‘파리지앵 썸머’.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파라다이스시티와 프랑스 관광청이 협업해 운영하는 ‘파리지앵 썸머’.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아예 해외 관광지의 문화와 미식을 국내에 옮겨 놓은 상품도 등장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프랑스관광청과 손잡고 다음달 31일까지 리조트 전체를 프랑스 테마로 꾸미는 ‘파리지앵 썸머’를 연다. 프랑스 정상급 페이스트리 셰프 톰 콜과 협업한 시즌 한정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고, 3300㎡(약 1000평) 규모 플라자에는 에펠탑과 개선문을 재현한 프랑스풍 가든마켓을 조성했다. 리조트 외벽에는 프랑스 주요 명소의 여름 풍경을 표현한 미디어 파사드를 상영한다. 항공권을 사지 않고도 프랑스의 미식과 예술, 생활문화를 경험하도록 한 ‘대리 여행’ 콘텐츠인 셈이다.

◇ 아이는 여름캠프, 부모는 휴식

자녀를 동반한 가족 고객을 겨냥한 호캉스는 놀이와 교육을 결합한 ‘에듀테인먼트’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신라호텔은 5층 키즈라운지를 플레이존, 리딩존, 프로그램존으로 재단장했다. 동굴 형태의 독서 공간 ‘북케이브’를 만들고 예술·만들기·예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음달까지 해양 생물을 주제로 한 미술 수업 ‘마이 버디 오션’을 열고, 이후에는 애프터눈티를 즐기며 식사 예절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워커힐이 여름 성수기 가족 단위 고객 수요를 겨냥해 선보이는 ‘2026 서머 키즈 캠프’  워커힐 제공
워커힐이 여름 성수기 가족 단위 고객 수요를 겨냥해 선보이는 ‘2026 서머 키즈 캠프’ 워커힐 제공
워커힐호텔앤리조트는 다음달 11일까지 2박3일 일정의 ‘2026 서머 키즈 캠프’를 운영한다. 어린이들은 국가대표 출신 이형택 감독이 이끄는 테니스 수업과 생존 수영, 쿠킹 클래스, 몰입형 전시 ‘빛의 시어터’ 관람 등에 참여한다. 자녀가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동안 부모는 클럽 라운지 해피아워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호텔이 아이에게는 여름캠프를, 부모에게는 독립된 자유 시간을 제공하는 셈이다.

◇ 호텔 라운지가 공연장으로

시그니엘 서울 더 라운지 전통 악기 2중주 공연.  롯데호텔앤리조트 제공
시그니엘 서울 더 라운지 전통 악기 2중주 공연. 롯데호텔앤리조트 제공
휴식과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려는 고객을 겨냥한 문화 향유형 상품도 등장했다. 시그니엘 서울은 매주 토요일 79층 ‘더 라운지’에서 전통예술 공연 ‘시그니엘 서울 K-럭셔리 살롱’을 연다.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 대금, 생황, 아쟁 등 전통악기에 클래식과 영화음악, 대중음악을 접목한다. 중앙대 전통예술학부의 젊은 국악인들이 참여하며, 더 라운지를 이용하는 고객은 별도의 공연장으로 이동하지 않고 식음 서비스를 즐기면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호텔업계가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은 객실 가격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역 관광이나 어린이 프로그램, 해외 문화, 공연을 결합하면 고객의 호텔 체류 시간을 늘리고 식음료와 부대시설의 추가 소비도 유도할 수 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