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물류 지각 변동…전국 수십 개 간납사 M&A 매물로
우리나라 병원은 대부분 특정 간접납품회사(간납사)를 거쳐 스텐트, 카테터, 임플란트, 수술도구 등 치료 재료를 조달한다. 간납사는 의료기기 및 의약품 유통의 핵심 창구 역할을 해왔지만, 그동안 대다수 병원 친인척이 대주주여서 불공정 논란이 컸다. 2027년 말 개정 의료기기법이 시행되면 병원의 특수관계자는 납품해온 간납사의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전국 80여 곳에 달하는 간납사 중 상당수가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아산병원도 간납사 메디굿파트너스 매각 절차 착수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서울아산병원에 주로 납품해온 간납사 메디굿파트너스의 지분 51%를 매각한다고 최근 공고했다. 매각주관사로는 삼일회계법인이 선정됐고 오는 29일 예비입찰제안서를 받을 예정이다. HD현대 계열사인 메디굿파트너스는 병원 물류·구매 서비스 등이 주력 사업으로 IB업계가 추산한 기업가치는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에 따르면 서울·천안·부천순천향병원에 주로 납품해온 간납사 동하메디칼 역시 조만간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아주대병원의 간납사인 ㈜대아를 비롯해 을지대병원의 토탈메디칼, 동국대병원의 정진코퍼레이션 등 간납사도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IB업계 관계자는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급하게 M&A 매물로 나올 경우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80여 곳의 간납사 중 상당수가 올해 M&A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메디굿파트너스 매각이 완료되면 국내 ‘빅5 병원’은 모두 개정 의료기기법에 따른 간납사 소유 금지 규정을 충족하게 된다. 서울성모병원 등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산하 병원에 납품해온 간납사 오페라살루따리스와 밸류프로는 지난 9일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소모성자재(MRO) 전문업체 서브원에 1000억원대에 매각됐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간납사인 에비슨케어는 대웅제약 오너 윤재승 최고비전책임자(CVO)의 개인 회사인 이지메디컴에 지난 5월 2500억원에 매각됐다. 삼성서울병원은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의약품 유통업체 지오영의 계열사 케어캠프가 주요 간납사라 개정 의료기기법으로부터 자유롭다. 서울대병원 역시 이지메디컴이 주요 간납사라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년에 팔면 늦다" 업계와 PEF, 간납사 M&A 물밑 협상중

그동안 국내 의료기기 제조·수입업체는 치료재료 등 제품을 병원에 바로 공급하지 못하고 병원의 간납사를 반드시 거쳐 납품하는 독특한 관행을 지켜왔다. 병원별로 간납사는 대부분 하나뿐이었고 대부분 병원 친인척이 경영에 관여했다. 10~20%에서 많게는 40%까지 중간 유통 수익을 남겨 ‘통행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수익은 병원 혹은 몇몇 의사에게 귀속되는 사례도 많았다. 배성윤 인제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병원에도 간납사와 유사한 구매대행업체(GPO)가 있지만, 세금계산서 발행 위주의 국내 업체와 달리 구매. 물류. 재고, 컨설팅 등 전문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개정 의료기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병원은 내년말까지 2년의 유예기간내 납품하는 간납사의 지분을 5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 정부도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었던 간납사 시장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업계에선 간납사의 주인이 바뀌면 병원의 재고관리 등 물류 운영의 전문성과 비용 절감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병원 물류의 지각변동을 앞두고 관련 업계와 PEF 들도 인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의료 IT와 물류 효율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윤재승 CVO의 이지메디컴은 추가 간납사 인수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메디컴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뿐만 아니라 서울아산병원, 이대서울병원, 강원대병원, 고신대복음병원 등의 간납사 자리도 꿰차고 있다. PEF 중에선 어피니티가 추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달 인수한 오페라와 밸류프로는 2023년 사들인 병원 전문의약품 유통업체 비아다빈치와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배 교수는 “병원에 더 많은 물품을 더 싸게 공급하려는 수요가 크기 때문에 M&A로 대형 간납사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