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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슐랭'보다 '성장슐랭'을
도병욱 산업부 차장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북돋는 건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정부가 관련 제도까지 내놓으며 힘을 쏟을 사안이냐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년에 수백조원을 버는 마당에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SK그룹 회장인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인공지능(AI) 트렌드에 올라타 일부 산업이 돈을 벌지만, 우리 경쟁력은 그대로이고 제조업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걱정할 정도다.
성장이 어려운 시대
지난 1분기 각 산업의 최대 생산 역량을 나타내는 생산능력지수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도체는 전년 동기 대비 15.2% 늘었지만, 다른 주요 업종은 작년과 달라진 게 없다. 자동차 제조업은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화학 제조업과 1차 금속 제조업(철강 조선 등)은 각각 2.0%, 0.5% 떨어졌다. 반도체도 안심하기 어렵다. 중국 CXMT 등 후발주자는 한국 기업을 따라잡을 기세다.기업이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늘리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성장을 응원하는 제도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의무만 늘어난다.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12개 법률을 통해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새로운 의무를 부과한다. 기업 자산이 5000억원을 넘어가는 순간 금산분리를 비롯한 94개 규제가 생긴다. 자산이 2조원을 넘어가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규제를 적용받는다. 자산이 11조6000억원이 되면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 모두 343개 규제나 의무가 부과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뛰어오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피터팬 콤플렉스’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업 커가도록 응원해야
정치권은 한술 더 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자 기업의 초과이윤을 배분하는 방법을 논의하자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기업이 성장해 고용과 투자를 늘릴수록 인센티브를 주자는 목소리는 전혀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앞으로 5년간 고용 창출과 투자 확대 계획이 있는 기업을 뽑아 연간 최대 2600억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줄 예정이다. 중국은 매출과 시장 점유율을 높인 기업에 기술 개발 자금을 지원한다. 프랑스도 비슷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현 정부는 틈만 나면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청와대 경제수석의 명칭을 경제성장수석으로, 재정경제부가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의 이름을 경제성장전략으로 바꿨을 정도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또 대기업으로 성장할 때마다 생기는 의무와 규제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덩치를 키운 강소기업을 위해 인센티브를 줄 생각도 없다. 시슐랭을 도입하기에 앞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일궈낸 기업을 응원해주는 성장슐랭 제도를 도입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