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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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40~50㎞를 뛰는 '열성러너' A씨(39).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뛰는 거리·속도는 줄였지만, 요즘도 꾸준히 러닝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한여름에도 열심인 이유는 날씨가 선선해질 10월 '가을 시즌'에 서울 도심을 가로지를 꿈에 부풀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월 초 신청해 둔 한 대회 때문에 요즘 좀 찜찜하다. 이미 지난 5월 참가권 판매가 끝난 대회인데도 코스정보란에 여전히 ‘준비중’으로 표시되는 등 안 좋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출발 장소도 홈페이지에는 ‘광화문광장 앞 대로변(예정)’으로 안내돼 있는데, 최근 포털사이트에는 ‘청계광장 앞 대로변(예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대회 주최 측이 지난해 미숙한 운영으로 러너들 사이에 입방아에 올랐던 곳이어서 '참가비 8만원만 떼이고 대회는 못 나가는 것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A씨와 같은 러너들의 걱정은 괜한 게 아니다. 최근 수년 간 러닝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국적으로 마라톤 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이 중 일부 대회는 장소 사용이나 교통 통제 협의가 마무리되기 전에 참가자를 모집하거나 행사 직전 일정을 막무가내로 변경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러너들 사이에선 개최 조건과 환불 규정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일정 협의 없었다"는데

2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 결과 A씨가 참가신청을 해 둔 대회는 관계 기관과 도로사용을 위한 협의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는 등 실제로 상당한 불안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페이지에 '광화문광장 앞 대로변(예정)'으로 표시된 출발장소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대회 주최 측이 대회 진행과 관련한 공식적인 협의요청을 일절 해 온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회 예정일에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공공행사가 예정돼있어 광화문 광장을 마라톤 코스에 포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사진=A씨가 신청한 러닝 대회 홈페이지 캡처
사진=A씨가 신청한 러닝 대회 홈페이지 캡처
환불 규정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주최 측은 접수 마감 이후에는 참가비를 환불하지 않으며,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 또는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대회가 취소돼도 참가비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홈페이지에 안내했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주최 측에 '광화문 일대에서 대회를 열지 못할 경우 장소를 변경하게 될지', '참가자가 변경된 장소에서 뛰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 환불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을 문의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해당 대회 주최 측이 지난해에도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단체여서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라톤 대회 난립…급기야 직전 취소도

실제로 최근 러닝 열풍을 타고 민간 마라톤 대회가 잇따라 생겨나는 가운데 개최 장소 사용 승인을 둘러싼 문제로 대회 직전 행사가 무산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주최사에서 지난 5월 16일 뚝섬한강공원 일대에서 열 예정이었던 '서울한강울트라마라톤'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잠정 연기됐다. 당시 약 1500명이 참가 신청을 마친 상태였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이 대회가 한강공원 사용 승인을 받지 않은 행사라며 강행할 경우 하천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심지어 대회 당일 뚝섬한강공원에는 드론라이트쇼 관람객 약 3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마라톤 참가자와 일반 시민의 보행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동대문구가 해당 대회 주최 측에 행사 승인 취소를 통보했고, 해당 조직위원회는 개최 이틀 전 대회를 잠정 연기했다. 조직위는 당시 "동대문구청으로부터 대회장 사용 및 안전관리계획에 대한 정식 승인을 받은 상태였으나 미래한강본부의 부당한 압박으로 승인이 취소됐다"고 반박했다. 연기된 일정에 참가하지 못하는 신청자에게는 참가비를 전액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마라톤 참가 신청 전 주최 기관의 과거 운영 이력과 개최 장소 승인 여부, 환불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러닝 열풍을 타고 마라톤 대회가 급증하면서 충분한 준비나 개최 여건을 갖추지 않은 행사도 생겨날 수 있다"며 "소비자는 주최 기관의 신뢰도나 실제 장소 사용 승인 여부 등을 꼼꼼히 살펴본 뒤 신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