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로벌PMC(주)
사진=글로벌PMC(주)
자산은 이제 한 개인의 성공을 증명하는 숫자를 넘어 국가의 경제적 체급과 미래 경쟁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됐습니다. 최근 발표된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는 단순한 부자 서열표가 아니라, 향후 10년간 글로벌 자본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고하는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위권의 면면을 뜯어보면 그 방향은 이미 뚜렷합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인공지능(AI)과 우주항공을 아우르는 기술 생태계의 가치를 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알파벳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AI 반도체 수요 폭증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대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 명단 대부분을 실리콘밸리 기반 기술 기업 창업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제조업·유통·금융 중심의 부의 축적 방식이 이제 AI와 첨단 기술 생태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흐름을 개별 기업의 주가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 패권이 자본 패권으로, 다시 국가 경쟁력의 서열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국가별 억만장자 분포는 이 연쇄 반응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미국은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며 억만장자 1000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고, 중국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전 세계 억만장자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기술과 자본이 소수 국가로 집중되는 패권 경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서열이 전통적인 국내총생산(GDP) 순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I 인프라와 서비스 생태계를 보유한 미국과 중국, 반도체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 AI 기술 기반이 탄탄한 일본으로 글로벌 자본이 집중되는 반면, AI 경쟁력이 부족한 국가는 시장 수익률에서부터 뚜렷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캐나다와 이탈리아에서 암호화폐 기반의 신흥 부호가 자국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사례까지 더해지면서, 부의 축적 경로 자체가 제조업·유통 중심에서 기술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투자 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은 49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하며 세계 15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했다는 수치는 분명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위권 자산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기존 대기업 가문의 상속과 전통 제조업 중심 구조에 기대고 있다는 한계도 확인됩니다. 반면 글로벌 투자자가 한국을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혁신 기업과 새로운 플랫폼의 성장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향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물론 자본시장과 자산시장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자가 눈여겨봐야 할 함의가 나옵니다. 기술 생태계가 조성한 부는 결국 사람과 기업이 물리적으로 모이는 공간에 대한 수요로 이어집니다. AI 혁명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기술 허브 도시로 고소득 전문인력과 혁신 기업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프라임 오피스는 물론 고급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까지 함께 확대시키며, 도시 간 자산 가치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 단위의 성장률이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였다면, 이제는 어느 도시가 AI 기업과 인재를 흡수하는 자석 역할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자가 국가를 GDP 규모보다 AI 경쟁력과 기술 생태계를 기준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계 부의 지도가 AI를 중심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산을 지키고 키우려는 투자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앞으로 자본은 성장률이 높은 국가보다 AI와 혁신 기업이 실제로 모여드는 도시 및 권역을 선별해 이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미래의 부동산 가치는 전통적인 입지 경쟁력뿐 아니라, 그 도시가 얼마나 강력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지에 따라 더욱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반도체 경쟁력을 미래 기술 생태계로 얼마나 빠르게 확장하느냐에 따라 국내로 유입되는 자본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그 자본이 향할 도시와 자산의 종류까지 함께 달라질 것입니다. 세계 부의 지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AI에 의해 다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투자자는 국가보다 도시를, 도시 안에서는 기술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미래 가치를 읽어야 할 때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용남 글로벌PMC(주) 대표이사 사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