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본 공개경쟁서 웃은 이지스…기관 신뢰 회복 '시동음'
기관투자가의 신뢰가 흔들리며 주요 출자사업에서 고전해온 이지스자산운용이 다시 수주 경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와 건설근로자공제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자금을 잇달아 맡으면서 10년 넘게 축적한 부동산 운용 역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1500억원 규모 국내 부동산 멀티전략 펀드의 위탁운용사 우선협상대상자로 이지스자산운용을 선정했다. 이지스는 코람코자산운용과의 막판 경쟁에서 앞섰다. 실사와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운용사로 선정될 예정이다.

우체국보험이 단독 출자하는 이 펀드는 자금의 70%를 국내 상장 리츠에, 나머지를 담보인정비율(LTV) 65% 이하의 부동산 선순위 담보대출에 투자한다. 기관투자가가 국내 상장 리츠 투자를 맡길 운용사를 공개경쟁으로 뽑은 첫 사례다. 기존 유사 투자가 대부분 수의계약이나 정책적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선정의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이지스가 2017년 업계 최초로 상장 리츠 전담 조직을 꾸린 뒤 축적한 투자 경험이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체증권투자파트는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주요 상장 부동산 시장을 두루 분석한다. 단기 주가 흐름보다 임대료와 공실률, 보유 자산의 가치 등 기초 부동산의 펀더멘털을 파고드는 운용 방식이 강점으로 꼽힌다. 여러 시장과 경기 사이클을 거치며 쌓은 데이터와 전문 인력이 공개 심사에서 경쟁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사업본부 선정에 앞서 다른 기관 자금 수주에서도 성과가 이어졌다. 이지스는 올 상반기 건설근로자공제회의 700억원 규모 국내 부동산 선순위 대출펀드 운용사로 단독 선정됐다. 지난달에는 캠코와 지방은행들이 조성하는 4100억원 규모 ‘지방은행 금융안정 지원펀드 2호’의 운용권도 따냈다. 상장 리츠와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채권 등 서로 다른 투자 전략에서 연이어 기관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

우정사업본부와 건근공, 캠코로 이어진 수주 성과는 이지스의 기관 신뢰 회복 여부를 가늠할 첫 시험대로 받아들여진다. 이지스는 지난해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 출자 펀드의 정보가 인수 후보자에게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을 겪었다. 이후 국민연금의 신규 위탁운용사 선정이 사실상 끊겼다. 올해 들어서도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의 대형 부동산 출자사업에서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이어졌다.

조갑주 대표는 지난 4월 5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직후 연기금과 공제회, 금융회사 등 주요 출자자(LP)를 직접 찾아다니며 관계 복원에 나섰다. 위탁자산 관리 방침과 회사의 경영 안정화 계획을 설명하고, 오랜 기간 축적한 운용 철학과 트랙레코드를 앞세워 신뢰 회복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근공과 캠코에 이은 우정사업본부 선정은 이 같은 행보가 수주 성과로 이어진 사례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 주요 출자사업에서는 여전히 경쟁사에 밀리고 있고, 지난해부터 핵심 인력의 이동도 이어졌다. 최근 수주가 일회성 반등에 그치지 않고 대형 블라인드펀드와 실물 부동산 투자로 확산할지가 관건이다.

표류 중인 경영권 매각 작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지스 최대주주 측과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지 못한 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제했다. 양측 모두 거래 의지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가치와 거래 조건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근 협상 속도는 다소 느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기관 자금 수주가 이어질 경우 이지스의 펀드레이징 역량과 플랫폼 가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부동산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가 운용사를 평가할 때 결국 보는 것은 전문 인력과 장기간 축적한 운용 성과”라며 “서로 다른 투자 전략에서 수주가 이어진다면 경영 안정뿐 아니라 향후 경영권 매각 협상에서도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