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대로 경기 용인에 이어 호남에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정부 계획이 어제 공식 발표됐다.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800조원을 투자해 추가로 서남권(호남권)에 전공정 반도체 생산라인(팹) 4기를 구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와 함께 충청권에 81조원 규모의 패키징(후공정) 거점을 육성하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에 55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함께 공개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한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가 대도약을 위한 삼각 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발표는 기업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며 “호남이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오히려 기회가 된 측면이 있고 용수와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이라고 말했다. 호남 반도체 투자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각종 우려와 비판을 직접 해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인허가부터 건설까지 걸리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생산 능력을 신속하게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이 위험을 안고 결정한 대규모 투자인 만큼 정부 지원에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용인에 건설 중인 SK의 메모리 팹 4기와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팹 6기를 완성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에 맞춰 진행 중인 생산 거점을 빠르게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호남 투자 결정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해명하고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2019년 인가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가 사전에 유치 계획을 밝힌 뒤 용인과 이천, 충북 청주, 경북 구미 등이 뛰어들어 유치 경쟁을 벌였고, 최종 대상지로 용인이 선정됐다. 이번에는 이런 절차를 거치진 않았다. 반도체산업특별법에 따르면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신청을 받는 것 외에 직접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도체 생산시설 확충의 시급함과 국가 균형발전의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정 절차 때문에 뒷말이 나오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에 팹 4기를 짓기로 한 것은 모험을 동반한 큰 도전이다.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인력 및 협력사 생태계 확보라는 당면 과제뿐만 아니라 업황 사이클이 달라지는 위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투자 시점과 방향에 대한 기업의 자율적인 의사결정권을 존중해주고, 정부 역시 최대한의 지원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