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드 시드니 기간에는 시드니 곳곳이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다
비비드 시드니 기간에는 시드니 곳곳이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다
누가 가을을 쓸쓸한 계절이라고 이야기했나. 빛의 찬란한 축제 ‘비비드 시드니’가 열리는 호주 시드니의 가을밤은 어느 계절보다 활기로 가득했다.

유독 일찍 찾아온 후덥지근하고 더운 바람에 하릴없이 지쳐가던 참이었다. 시드니 국제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여름의 무기력을 상쾌한 바람이 단숨에 깨워주었다. 남반구의 호주는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산다. 한국에서 여름으로 들어서는 6월, 이곳은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실 한동안 시드니의 가을·겨울은 여행 비수기에 가까웠다. 화창한 계절을 두고, 일부러 비가 잦고, 해가 짧은 날을 골라 귀한 휴가를 떠나는 이들은 없을테니. 때문에 일 년 중 호텔 숙박비가 가장 저렴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비비드 시드니’가 시작되면서 반전을 맞았다. 이는 빛, 음악, 미식, 아이디어의 네 가지 테마로 도시 전역을 물들이는 남반구 최대 규모의 축제다.
비비드 시드니 기간에는 시드니 곳곳이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다
비비드 시드니 기간에는 시드니 곳곳이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다
축제 기간 동안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 등 시드니의 대표 명소는 화려한 조명으로 물든다. 사실 호주 사람들은 ‘미라클 모닝’의 대표 주자라고 해도 될 만큼, 아침형 인간에 가깝다. 많은 식당과 카페가 오전 7시부터 열고, 오후 3시쯤 문을 닫을 정도다. 때문에 시드니는 ‘해가 지면 마땅한 즐길 거리가 없는 심심한 도시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축제 기간은 해가 지면서부터 도시가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토록 화려한 가을의 시드니, '비비드 시드니'를 가다
오후 7시 정각, 서큘러 키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탄성이 터뜨렸다. 시드니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오페라 하우스 위로 물고기가 우아하게 지느러미를 흔들며 유영하기 시작한 것. 프랑스의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얀 응우에 마의 디지털 아트 ‘오페라 문디’다. 루마니아 작곡가 미샤 블라노스의 음악과 어우러져 오페라 하우스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서큘러 키, 더 록스, 바랑 가루, 달링하버까지 이어지는 6.5km 구간은 화려하게 변신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의 유산들도 총천연색 조명을 받아 빛났다.

이를 감상하며 산책을 즐기던 차에 마주친 익숙한 로고들. 바로 삼성과 기아다. 알고 보니 축제의 대표 후원 기업 세 곳 중 두 곳이 한국 기업이라는 후문. 특히 삼성 부스에서는 현지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셀피를 찍고, 릴스를 촬영하고 있었다. 어느 건물 앞에 서는 춤을 추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헤드폰으로 DJ가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고스트 댄싱’ 프로그램 참여자들이었다. 아무렴, 축제에 음악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달링하버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꽃놀이
달링하버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꽃놀이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어느새 달링하버에 다다랐다. 날씨는 습기 없이 쾌청해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침 달링하버에서는 불꽃놀이가 축제의 밤을 장식하고 있었다. 시드니의 가을은 비수기가 아니라, 여행의 ‘제철’이었다.
비비드 파이어 키친 전경
비비드 파이어 키친 전경
비비드 파이어 키친 전경
비비드 파이어 키친 전경
비비드 시드니, 미식의 향연
모르긴 몰라도, 호주 사람들 역시 우리만큼이나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이벤트가 ‘푸드’를 주제로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비비드 파이어 키친’ 이 열린 바랑가루 지역에서는 무대 위에 거대한 그릴이 올랐다. 호주의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비큐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무대 위에 설치된 거대한 바비큐 그릴은 그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였다
무대 위에 설치된 거대한 바비큐 그릴은 그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였다
셰프들이 가운을 입고 무대에서 소, 양, 돼지를 구워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를 연상케 했다. 갓구워내 뜨끈하고 불향이 살아있는 바비큐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오토렝기와 함께하는 쉐어 테이블 현장
오토렝기와 함께하는 쉐어 테이블 현장
세계적인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도 열렸다. ‘요탐 오토렝기와 함께하는 쉐어 테이블’이 그 주인공. 요탐 오토렝기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서양에서는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는 셰프다. 특히 호주에서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 <마스터 셰프> 호주판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더욱 유명해졌다. 그 덕분인지 행사는 1인 참석비가 한화 30만 원을 넘어가는데도 예매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매진됐다.
오토렝기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채소를 페스토 형식으로 만든 디쉬
오토렝기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채소를 페스토 형식으로 만든 디쉬
이벤트는 오토렝기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식재료를 사용해 차린 코스요리를 맛보면서 그의 요리 철학과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꾸며졌다. 계절성과 지역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디쉬는 전날의 바비큐와 달리 건강하면서도 자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거대한 하나의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오토 렝기가 직접 고른 와인으로 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자리는 비비드 시드니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