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다리가 짧아 보이잖아”

딱 봐도 친한 연인 사이 같은데, 남자 친구는 일방적으로 혼이 나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는 ‘로우 앵글 샷’을 원했는데 반대로 찍어버린 듯했다. 요즘 일상이나 여행지에서 여자 친구를 예쁘게 담아주지 못해 힘들어하는 젊은 남성들이 사진 잘 찍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료 클래스나 유튜브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일상이 화보가 되는 시대, 그러나 찾아온 사진 권태기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일상을 화보로 만들어준다며 가장 자연스럽게 풍경을 느끼는 비율인 2(하늘):1(땅) 법칙, 야경과 불꽃놀이 촬영, 접시 3개로 삼각형을 그리는 음식 사진, 역광 보정과 부분 흑백 등. 스마트폰의 숨은 기능을 배우며 감탄했던 사진 특강의 추억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접한 건 대학 평생교육원 사진 초급반을 통해서였다. 이후 여행지나 일상에서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렸고, 잡지사에 원고를 보낼 때도 사진은 늘 빠지지 않는 동반자였다. 누군가에게 “사진 참 괜찮다”라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골프도 한창 재미있는 보기 플레이어(Bogey Player)에 도달하면 엘보(Elbow)나 입스(Yips)가 와서 슬럼프에 빠지면서 흥미가 떨어지듯, 사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눈앞에 좋은 풍경이 떡 하니 펼쳐졌는데 이상하게 셔터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그게 그거 같고 아무런 설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갈 때도 아예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고 스마트폰 정도로 겨우 흔적 정도만 남기는 편함을 선택했다. 사진이 재미없어지는 순간, 사진과의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제주 산담 : 익숙함을 깨는 차별화된 시선

멀어진 친구는 우연한 계기로 다시 친해질 수 있다고 했던가. 최근 논산 명재고택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꽃이 환하게 핀 400년 된 배롱나무가 반겨 주었다. 지방 양반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한 한옥을 지나 구수한 장 냄새를 맡으며 완만한 경사지를 오르니, 마치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처럼 대오를 잘 맞춘 장독대가 나타났다. 오랜 세월을 품은 거목 사이로 보이는 장독대와 고택의 어우러짐은 가히 ‘인생 샷’의 명소임을 재차 확인했다.
거목 사이로 보이는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처럼 대오를 잘 맞춘 장독대와 고택의 어우러짐 ©서병철
거목 사이로 보이는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처럼 대오를 잘 맞춘 장독대와 고택의 어우러짐 ©서병철
근처 김종범 사진작가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편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작고 아담한 노란색 교회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사진관 주변 곳곳에 설치한 작가가 사랑하는 피사체들 덕분에 그가 어떤 스타일과 철학을 추구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파란 벽 너머로 ‘LOVE’ 글자 위에 달린 빨간 쇠고리를 보면서 어떤 의미일지 잠시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다. 이 작가 역시 자신이 꾸며놓은 피사체들과 놀이를 즐겼던 게 아닐까? 예전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라는 도시를 여행하면서 폴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봤던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상은 달라도 자신만의 놀이터를 구축해 놓았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
[좌]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작고 아담한 노란색 교회 ©서병철  [우] 파란 벽 너머 'LOVE' 글자 위에 빨간 쇠고리 ©서병철
[좌]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작고 아담한 노란색 교회 ©서병철 [우] 파란 벽 너머 'LOVE' 글자 위에 빨간 쇠고리 ©서병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주 풍경 사진전에서 만난 산담(무덤) 시리즈는 이미 알던 제주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예로부터 무덤 그 자체를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고 그 무덤 주변을 돌로 둘러쌓은 담을 산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무덤을 보며 작가는 이야기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제주 특유의 삶의 철학이 깔려 있다”고.

보통 한국에서 무덤은 어둡고 피하고 싶은 소재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푸른 초원 위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무덤들이 마치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듯한 한 사진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별화된 시선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특히 다섯 무덤과 바깥 경계석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을 완성하는 듯했다.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아닌,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차별화된 시선을 갖고 싶다!’
김종범 사진작가 산담 작품_다섯 무덤과 바깥 경계석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같다
김종범 사진작가 산담 작품_다섯 무덤과 바깥 경계석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같다

60년 한국 역사를 프레임에 담은 90세 일본 사진가의 울림

“사진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묵직한 질문에 답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의 얼굴>이 최근 화제다. 격동의 역사와 현실 삶의 현장을 묵묵히 기록한 90세의 일본 포토저널리즘의 대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이야기다. 미나마타병 현장 고발을 계기로 사진가가 된 그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찾아가고, 무거운 망원렌즈를 들기 힘들어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도 촬영을 위해 사다리까지 오른다.

그의 한국 취재는 1965년 서울대 학생들의 침묵시위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무표정하지만 비장하게 걸어가는 학생들의 비폭력 시위 모습은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했다. 억눌린 서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청계천 사진은 그가 유독 애정하는 작품이다. 당시에는 못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다며 비아냥과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사의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1965년 서울대 학생들의 침묵시위 ©구와바라 시세이
1965년 서울대 학생들의 침묵시위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교각사이에 사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교각사이에 사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 ©구와바라 시세이
그는 당시 ‘개 밥그릇’ 취급받던 도자기에 빠져 경기도 광주에서 머무느라 5.18 민주화 운동 현장에 가지 못한 것이 큰 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2024년 비상계엄에 대한 찬반 시위 현장까지 누비며 그 한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그의 꿈은 통일된 한국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는 것이다. 지난 60년 한국 현대사가 그의 프레임에 남아 있는 것을 넘어서 프레임 밖 그의 인생도 보였다. 그에게 사진은 잠시 즐기는 취미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해 온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다시, 사진이라는 평생의 친구를 만나다

한국에서도 두 차례 사진전을 했고, 인기가 있는 요시고(Yosigo)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사진작가 호세 하비레르 세라노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카메라를 가진 모두가 사진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으로 서툴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건 정말 사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사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때로 지나친 성취욕과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좋아했던 재미가 싫어지곤 한다. 사진이라는 취미는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매체로만 대할 때 권태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연히 두 사진가의 삶을 작품과 영상으로 마주하며 생각해 보았다. 사진을 사랑하고 평생의 동반자로 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남들과 똑같은 구도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사물과 현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마음을 나누는 것. 나만의 시선을 찾아가는 그 멈추지 않는 여정 자체가 사진과 깊은 우정을 쌓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또한 순간의 소중한 경험을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아득히 사라지고 만다. 오늘 당신이 담아낸 사진 한 장과 짧은 글 몇 줄이, 어떤 한 사람에게 따뜻한 공감이나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오 괜찮네”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잊고 지냈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 친해졌다. 아마 권태기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땐 또 다른 계기로 다시 좋아하게 되기를 바란다. 권태기와 즐거움, 위기와 기회가 반복되는 것이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