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Wellness)'라는 키워드가 시대의 전면에 대두할 때, 가장 핫하게 떠오른 단어는 단연 '사우나(Sauna)'다. 최근 사우나 산업은 전에 없던 다채로운 형태로 만개하고 있으며, 부동산·뷰티·헬스케어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이를 핵심 브랜딩과 마케팅 요소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한창이다.

문득 국내로 시선을 돌려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고유의 모습을 유지해 온 공간 중 하나는 단연 '동네 목욕탕'일 것이다. 넓고 뜨거운 대형 탕, 한증막이라 불리는 건식·습식 사우나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스펙트럼은 더욱 화려해진다. 소금 사우나, 옥 사우나, 열 사우나… 그 벽면에는 현대의 현행 광고법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과감하고 유쾌한 문구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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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고민은 깊어졌다. '사람들의 건강과 아름다움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일은 무엇일까?' 화장품으로 시작했던 사업과 미학적 방향성은 결국 가장 본원적인 뷰티, 바로 '목욕탕'이라는 종착지로 향했다. 수년 동안 변하지 않은 오리지널리티를 더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일. 하지만 현실의 문턱은 높았고, 자본과 실행의 비례 관계 속에서 수많은 고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먼저 전 세계의 사우나 문화를 몸소 체득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촬영이 철저히 금지된 공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많은 장소를 직접 경험하며 그때그때 기록한 메모와 정중히 양해를 구해 남긴 사진들을 바탕으로 이 특별한 여정을 기록해 본다.

사우나 탐방을 통해 얻은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고온의 사우나와 차가운 냉탕을 오가는 기본 프로토콜은 동일함에도, 이를 해석하고 소비하는 형태와 문화는 국가마다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 대중성 속에 숨은 정겨운 추억과 청결의 미학

한국의 사우나는 대체로 '대중목욕탕'의 형태를 띤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가 수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었던 냉탕과, 여러 명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온탕의 풍경. 주된 목적은 단연 '청결과 위생'이다.
태백산 태백호텔의 태백사우나 / ©김한균
태백산 태백호텔의 태백사우나 / ©김한균
최근 방문했던 태백산 태백호텔의 태백사우나는 유독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했다. 좌식 세신 공간만 무려 50여 석, 샤워 부스만 20여 개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였다. 보석 사우나, 소금 사우나 등 섭씨 40도부터 90도에 이르는 다채로운 온도대의 사우나 시설이 정갈하게 갖춰져 있었다.

한국의 목욕 문화는 남녀가 철저히 구분된 상태에서 몸을 전부 비운 채 들어가는 형태가 100%다. 서울에서는 호텔 멤버십 기반의 회원제 사우나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고, 동네마다 작고 정겨운 목욕탕들이 하나의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담당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물리적 특징은, 한국 목욕탕의 냉탕 온도가 대부분 17~20°C 사이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럽: 한계에 도전하고 연대하는 '소셜 사우나'

이제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 본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SANT ROCH'는 내 사우나 인생 10년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동시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부터 이른바 '소셜 사우나(Social Sauna)'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아이스배스하우스 / ©김한균
더아이스배스하우스 / ©김한균
더아이스배스하우스 / ©김한균
더아이스배스하우스 / ©김한균
내가 참여한 가이드 클래스는 극한의 고온을 여럿이 함께 견뎌내야 하는 일종의 정밀한 리추얼이었다. 사우나 가이드의 구호에 맞춰 마치 혹독한 운동을 하듯 참아낸 뒤, 순서대로 야외로 나가 4~5°C의 극저온 콜드 플런지(Cold Plunge)에 몸을 던져 3분간 버텨낸다. 이 강렬한 대조의 경험을 한 번 맛본 이라면 그 감각적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런던의 'ARC COMMUNITY' 역시 매력적인 소셜 사우나다. 파리에 비해 한층 캐주얼하고 활기차며, 자유분방한 에너지 속에서 리추얼이 이루어진다.
아더쉽 / 출처. Othership 페이스북
아더쉽 / 출처. Othership 페이스북
소셜 사우나의 대명사를 꼽자면 누구나 뉴욕의 '아더쉽(Othership)'을 떠올릴 것이다. 아더쉽은 뉴욕 특유의 분주함 속에서 고요함과 혼란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나이, 인종, 언어를 초월한 다양한 이들로 북적여 처음엔 고막이 울릴 정도지만, 가이드 사우나가 시작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에 휩싸인다. 냉탕 시스템 역시 유럽과 유사한 극저온을 유지한다.
아더쉽 / ©김한균
아더쉽 / ©김한균
이러한 현대적 소셜 사우나의 기틀은 뉴욕의 '레메디 플레이스(Remedy Place)'가 선구적으로 이끌었다. 이어 피트니스 브랜드 '에퀴녹스(Equinox)'는 운동 후 회복(Recovery)의 개념으로 다양한 사우나, 콜드 플러시, 테라피 시설을 결합하며 트렌드를 완벽히 정착시켰다.

스위스에서 경험한 문화적 충격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5성급 하이엔드 호텔의 사우나조차 성별 구분 없이 수영복을 완전히 벗고 들어가는 무소유의 형태가 흔했다. 현지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즐겼고, 처음엔 난감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들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원래 '사우나(Sauna)'는 핀란드어로 '목욕탕'을 뜻하며, 불을 피울 때 나는 연기에서 유래한 단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전통 '로일리(Löyly)' 방식은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뜨거운 증기로 공기를 데우는 기법인데, 유럽에서는 여전히 이 클래식한 방식을 고수한다. 여기에 증기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 수건이나 부채를 활용하는 '아우푸구스(Aufguss)' 퍼포먼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오세아니아 & 아시아: 프라이빗 회복과 엔터테인먼트의 진화

방향을 틀어 싱가포르, 호주, 일본 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으로 향해본다.
XTRA CLUB / ©김한균
XTRA CLUB / ©김한균
호주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공간은 단연 'XTRA CLUB'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방문하기를 권하고 싶은 곳이다.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완벽한 휴식을 보장하며, 뛰어난 청결도와 조용한 환경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프라이빗 인프라레드(적외선) 사우나가 잘 갖춰져 있어 2인이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최적이었다. 냉탕 역시 4~5°C와 10°C 두 가지 옵션이 각각 3개씩 나뉘어 있어 세심한 회복을 도왔으며, 탕 자체도 2인 맞춤형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가까운 일본의 사우나 문화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사우나를 다룬 만화 《사도(サ道)》는 젊은 층을 사우나의 세계로 입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XTRA CLUB / ©김한균
XTRA CLUB / ©김한균
최근 한국에서도 자주 쓰이는 '토토노우(과호흡·이완을 통한 정돈 상태)'라는 개념 역시 일본에서 정교하게 브랜딩된 단어다. '정리정돈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하여, 고온의 사우나, 저온의 냉탕, 그리고 외기욕(야외 휴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토콜이 인체 호르몬 밸런스를 정돈해 준다는 데서 착안했다.

본래 온천이 발달했던 일본은 팬데믹 이후 여럿이 모이는 형태에서 벗어나, 혼자 또는 소수로 즐기는 프라이빗 사우나 및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한 형태로 발빠르게 전환했다. 오사카의 '데세(DESSE)', 도쿄의 '사우나 도쿄(SAUNA TOKYO)'가 대표적이다. 시간제로 운영되며, 냉탕은 아주 차갑게, 사우나는 아주 뜨겁게 설정해 극명한 대조를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나의 본질, 그리고 한국 사우나가 나아가야 할 길

사우나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회복의 공간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친 현대인들이 본능적으로 찾아드는 치유의 안식처일 것이다.
SOAK 방콕 / ©김한균
SOAK 방콕 / ©김한균
국적을 불문하고 사우나와 목욕탕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장소이자, 인간이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는 오래된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소통의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한국은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정을 나누고, 미국은 조용히 명상하며 내면에 집중한다. 일본은 함께 뜨거움과 차가움을 견뎌내는 동반자가 되고, 유럽은 자연의 품 안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사우나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사수해야 할까? 분명 국내 사우나 시장은 지금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건강과 뷰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메디컬적 치유인가, 독창적인 브랜드로서의 경험인가, 혹은 공간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적 접근인가.

아직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명확한 사실이 있다.

모든 착장을 벗어던진 채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 심신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장소.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그 본질적인 안식처로서 사우나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