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Wellness)'라는 키워드가 시대의 전면에 대두할 때, 가장 핫하게 떠오른 단어는 단연 '사우나(Sauna)'다. 최근 사우나 산업은 전에 없던 다채로운 형태로 만개하고 있으며, 부동산·뷰티·헬스케어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이를 핵심 브랜딩과 마케팅 요소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한창이다.
문득 국내로 시선을 돌려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고유의 모습을 유지해 온 공간 중 하나는 단연 '동네 목욕탕'일 것이다. 넓고 뜨거운 대형 탕, 한증막이라 불리는 건식·습식 사우나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스펙트럼은 더욱 화려해진다. 소금 사우나, 옥 사우나, 열 사우나… 그 벽면에는 현대의 현행 광고법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과감하고 유쾌한 문구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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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고민은 깊어졌다. '사람들의 건강과 아름다움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일은 무엇일까?' 화장품으로 시작했던 사업과 미학적 방향성은 결국 가장 본원적인 뷰티, 바로 '목욕탕'이라는 종착지로 향했다. 수년 동안 변하지 않은 오리지널리티를 더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일. 하지만 현실의 문턱은 높았고, 자본과 실행의 비례 관계 속에서 수많은 고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먼저 전 세계의 사우나 문화를 몸소 체득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촬영이 철저히 금지된 공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많은 장소를 직접 경험하며 그때그때 기록한 메모와 정중히 양해를 구해 남긴 사진들을 바탕으로 이 특별한 여정을 기록해 본다.
사우나 탐방을 통해 얻은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고온의 사우나와 차가운 냉탕을 오가는 기본 프로토콜은 동일함에도, 이를 해석하고 소비하는 형태와 문화는 국가마다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 대중성 속에 숨은 정겨운 추억과 청결의 미학
한국의 사우나는 대체로 '대중목욕탕'의 형태를 띤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가 수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었던 냉탕과, 여러 명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온탕의 풍경. 주된 목적은 단연 '청결과 위생'이다.
한국의 목욕 문화는 남녀가 철저히 구분된 상태에서 몸을 전부 비운 채 들어가는 형태가 100%다. 서울에서는 호텔 멤버십 기반의 회원제 사우나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고, 동네마다 작고 정겨운 목욕탕들이 하나의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담당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물리적 특징은, 한국 목욕탕의 냉탕 온도가 대부분 17~20°C 사이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럽: 한계에 도전하고 연대하는 '소셜 사우나'
이제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 본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SANT ROCH'는 내 사우나 인생 10년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동시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부터 이른바 '소셜 사우나(Social Sauna)'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런던의 'ARC COMMUNITY' 역시 매력적인 소셜 사우나다. 파리에 비해 한층 캐주얼하고 활기차며, 자유분방한 에너지 속에서 리추얼이 이루어진다.
아더쉽 / 출처. Othership 페이스북
소셜 사우나의 대명사를 꼽자면 누구나 뉴욕의 '아더쉽(Othership)'을 떠올릴 것이다. 아더쉽은 뉴욕 특유의 분주함 속에서 고요함과 혼란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나이, 인종, 언어를 초월한 다양한 이들로 북적여 처음엔 고막이 울릴 정도지만, 가이드 사우나가 시작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에 휩싸인다. 냉탕 시스템 역시 유럽과 유사한 극저온을 유지한다.
스위스에서 경험한 문화적 충격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5성급 하이엔드 호텔의 사우나조차 성별 구분 없이 수영복을 완전히 벗고 들어가는 무소유의 형태가 흔했다. 현지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즐겼고, 처음엔 난감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들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원래 '사우나(Sauna)'는 핀란드어로 '목욕탕'을 뜻하며, 불을 피울 때 나는 연기에서 유래한 단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전통 '로일리(Löyly)' 방식은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뜨거운 증기로 공기를 데우는 기법인데, 유럽에서는 여전히 이 클래식한 방식을 고수한다. 여기에 증기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 수건이나 부채를 활용하는 '아우푸구스(Aufguss)' 퍼포먼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본래 온천이 발달했던 일본은 팬데믹 이후 여럿이 모이는 형태에서 벗어나, 혼자 또는 소수로 즐기는 프라이빗 사우나 및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한 형태로 발빠르게 전환했다. 오사카의 '데세(DESSE)', 도쿄의 '사우나 도쿄(SAUNA TOKYO)'가 대표적이다. 시간제로 운영되며, 냉탕은 아주 차갑게, 사우나는 아주 뜨겁게 설정해 극명한 대조를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나의 본질, 그리고 한국 사우나가 나아가야 할 길
사우나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회복의 공간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친 현대인들이 본능적으로 찾아드는 치유의 안식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사우나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사수해야 할까? 분명 국내 사우나 시장은 지금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건강과 뷰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메디컬적 치유인가, 독창적인 브랜드로서의 경험인가, 혹은 공간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적 접근인가.
아직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명확한 사실이 있다.
모든 착장을 벗어던진 채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 심신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장소.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그 본질적인 안식처로서 사우나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