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백석종이 오는 7월 오페라 ‘투란도트’로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아티스트 제공
테너 백석종이 오는 7월 오페라 ‘투란도트’로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아티스트 제공
“백석종 없이는 세계 오페라 무대가 멈춘다.”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흔히 도는 말이다. 400년 넘게 서양 클래식 문화의 최정점을 지배하고 있는 오페라의 끝에 테너 백석종(40)이 있다. 테너는 남성 성부 가운데 가장 높은 음역. 오페라의 영웅과 연인, 인간의 희망과 절망을 가장 극적으로 노래하는 성부다. 그 가운데 ‘리릭 스핀토(lyric spinto) 테너’는 한국 성악가들에게 ‘마의 장벽’과 같았다. 서정성과 강인함, 고음의 추진력과 극적 밀도를 동시에 요구해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프랑코 코렐리가 리릭 스핀토다.

리릭 스핀토 성부에서 백석종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 등 오페라 주요 극장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미 몇 년 치 스케줄이 가득 차 있다. 파바로티를 동경하던 어린 시절, 암흑과 같던 시절을 지나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과정은 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각국의 유력 매체가 그를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테너 백석종을 지난 6일 한국경제 아르떼가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오는 7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으로 한국을 찾는다. 고국을 떠난 지 20년. 국내 무대에서 전막 오페라로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파바로티를 꿈꾸다

오페라 ‘투란도트’에 칼라프 왕자 역으로 출연한 테너 백석종.  /아티스트 제공
오페라 ‘투란도트’에 칼라프 왕자 역으로 출연한 테너 백석종. /아티스트 제공
1985년 전주에서 태어난 백석종은 전주예술고를 거쳐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바리톤으로 노래를 시작한 그는 유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국제무대에서 자리를 넓혀갔다. 안정적 커리어를 쌓아가던 젊은 바리톤 성악가의 마음 깊은 곳에 어린 시절 본 한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성악가는 누구인가?’를 입력했을 때 흘러나온 파바로티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다.

“그때부터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닮고 싶었어요. 단순히 높은 음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승리를 확신하며 ‘Vincero(나는 승리하리라)’를 외치는 칼라프의 목소리였지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끌렸어요.”

백석종은 원래 바리톤이었다. 샌프란시스코오페라의 영아티스트로 발탁될 만큼 촉망받았고, 세계적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은 그를 “고음이 잘 나는 하이 바리톤”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석종은 자신이 쌓아온 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2년 가까운 암흑 같은 시간을 지나 마침내 자신의 진짜 성부인 리릭 스핀토 테너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전향한 결정적 계기는 테너 이용훈과의 만남이었다. 주변에선 “고음이 잘 나는 영 베르디 바리톤일 뿐”이라며 만류했다. 그때 이용훈은 그의 소리를 듣고 말했다. “석종씨는 무조건 세계적인 테너가 될 수 있습니다. 1년 반에서 2년은 걸리겠지만, 혼자서도 소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힘든 관문은 ‘파사지오’였어요. 중음에서 고음으로 넘어가는 테너의 결정적 음역대를 말하죠. 바리톤의 두꺼운 소리를 버리지 못해 1년 가까이 목에 걸렸어요. 공연을 망치는 악몽을 꾸기도 했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도자를 찾아가기 어려운 시기여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한인 교회에서 지휘자로 일하며 매일 혼자 발성을 연구했어요. 성경을 큰 소리로 읽으며 ‘말하듯 노래하기’를 훈련했고, 후두를 억지로 떨어뜨리는 대신 숨과 몸 전체로 뒤쪽 공간을 여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그때 비로소 파사지오가 해결됐습니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그의 음악 인생은 애초에 좌절로 시작됐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던 시절, 원하던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다. 방 침대에 누워 울고 있을 때 부모님이 말했다. “누나 따라서 노래 한번 해볼래?” 성악을 전공하던 누나의 선생님을 찾아갔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1년을 준비해 예고에 진학했다. 그것이 백석종의 출발점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은 더 가혹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생활비와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함께 유학 중이던 누나는 뉴욕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10년 가까이 그와 살며 월세를 벌어 뒷바라지했다. 어머니는 경제적 지원 대신 매일 기도로 아들을 붙들었다. 어느 날 백석종이 어떤 기도를 하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직전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 빛처럼 네 목소리가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말은 훗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되살아났다. 백석종이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를 부르던 순간이다. “동이 트기 전까지 아무도 나의 이름을 알지 못하리”라는 대목에서 누나와 좁은 방에서 버티던 시절과 어머니의 기도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는 “그때의 전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바리톤 시절의 경험은 강력한 무기가 됐다. 백석종은 “탄탄한 중저음 덕분에 고음으로 갈수록 견고하고 밀도 있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는 소리를 앞으로 강하게 쏘는 방식을 경계한다. “소리는 레이저가 아니라 파도처럼 퍼져야 합니다.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져나가듯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공명해야 극장 끝까지 전달됩니다.”

대타 무대에서 쏟아진 찬사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한 장면.  /ⓒ Clive Barda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한 장면. /ⓒ Clive Barda
그의 커리어 전환점도 극적이다. 영국 로열오페라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을 며칠 앞두고 투리두 역 대타 제안이 왔다. 처음 사흘은 동선과 박자를 맞추지 못해 헤맸다. 하지만 극장은 그를 기다려줬고, 1주일 남짓 준비해 오른 무대는 세계 오페라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이 됐다.

백석종의 대표 레퍼토리는 오늘날 세계 오페라계가 가장 원하는 영웅들이다. 푸치니 ‘투란도트’의 칼라프, ‘라 보엠’의 로돌포, 베르디 ‘아이다’의 라다메스,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의 삼손, 베르디 ‘맥베스’의 맥더프. 여기에 ‘토스카’ ‘나비부인’ ‘서부의 아가씨’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등 베리스모 오페라(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사실주의 오페라 양식)까지 아우르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는 7월 24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백석종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을 맡았다.

“해외 수많은 극장에 섰지만 이번 무대가 가장 설레고 떨려요.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저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 가치는 같지만, 가장 사랑하는 역할인 칼라프로 고국 관객을 만나는 건 큰 축복입니다.”

한국 무대가 끝나면 백석종의 무대는 뉴욕 메트의 ‘서부의 아가씨’ ‘토스카’, 런던 코벤트가든의 ‘나비부인’, 밀라노 아레나 디 베로나의 ‘아이다’ 등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선은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다. 베르디의 ‘오텔로’다. 그는 “리릭 스핀토 테너의 정점인 배역인 만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곡은 그가 그토록 선망한 영웅 파바로티조차 넘지 못한 산이다. 음색의 한계로 전막 무대에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스튜디오 녹음에 만족해야 했던 ‘성악계의 에베레스트’다.

※백석종의 심층 인터뷰와 평론, 화보집은 아르떼매거진 7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조동균·조민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