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세대, 다시 종이책을 들다
Cover Story
책이 패션 소품이라고?
삶의 태도 보여주는 오브제
영상은 몇 초면 지나가지만
긴 문장은 인생에 오래 머물러
책이 패션 소품이라고?
삶의 태도 보여주는 오브제
영상은 몇 초면 지나가지만
긴 문장은 인생에 오래 머물러
경험에 가치 두는 사람들
독서라는 행위 역시 ‘경험 소비’에 가깝다. 최근 예스24에 따르면 20대의 문학 분야 도서 구매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독서 모임 플랫폼 이용자도 크게 늘고 있다. 책 읽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취향처럼 소비되는 추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숏폼’에 대한 피로감이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짧은 영상을 본다.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소비하고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농담처럼 “뇌가 절여졌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숏폼에서 누적되는 피로감은 꽤 깊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복잡한 인간관계 역시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숏폼은 뇌를 순간적인 자극으로 깨우지만, 독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음을 눕힌다. 그래서 영상 세대의 독서는 ‘회복’을 위한 시도에 가까워 보인다. 무작정 자기계발서를 읽던 과거의 독서 패턴과는 향유 방식도 달라졌다. 공부의 의미보다 정서적 의미가 더 강한 독서를 즐긴다. 멍하니 읽고, 감정을 정리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조성한다. 그리고 타인의 문장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설명한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멈춰 있을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텍스트 힙’이 뜬 이유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른바 ‘텍스트 힙(text hip)’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감각적인 취향으로 소비되는 현상이다. SNS에서는 도서관에서 입을 법한 패션 무드를 뜻하는 ‘라이브러리코어(library-core)’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책을 읽는 행위뿐 아니라 도서관 특유의 조용하고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까지 하나의 취향으로 소비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런 흐름은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독서를 장려하거나 북클럽을 운영하는 ‘셀럽’도 늘고 있다. 책이 패션 소품이 된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오브제가 된 셈이다.우리는 왜 다시 아날로그를 찾고 있을까. 종이책을 비롯해 필름카메라, LP, 손글씨처럼 느리고 불편한 것도 다시 사랑받고 있다. 더 쉽고 빠르고 편리한 것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굳이 불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아마 그 불편함 속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느림은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을 통해 쉼을 찾는다.
영상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문장은 오래 머문다. 릴스 하나는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어떤 문장은 사람 안에 몇 년 동안 남아 있기도 한다. 누군가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괜찮아”라는 말보다 책 속의 한 문장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정보보다 문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독서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속도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임이랑 작가(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