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도시' 뉴욕, Reading Party에 빠지다
미국 뉴욕을 걷다 보면 골목마다 늘어선 줄을 마주친다. 날씨만큼이나 흔한 스몰토크는 줄의 정체를 묻는 일이다. “뭐 때문에 줄 서 있는 거예요?” “말차 라테 팝업이요.” “더 로우(The Row) 가방을 200달러에 판대서요.” 관광객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든 손만 뻗으면 24시간 허락되는 자극에 유혹된다. 뉴욕은 세상에서 ‘소비자’가 되기 가장 쉬운 도시다.

그리고 어쩌면, 소비자의 가장 완벽한 반댓말은 ‘독자’다. 파티, 샘플 세일, 뮤지컬 같은 흥미진진한 수백 개의 선택지가 널려 있는, 잠들지 않는 이 도시에서 최근 책 읽기가 유행하고 있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책을 읽고 이후 대화를 나누는 일명 ‘리딩 파티(reading party)’는 줄줄이 매진이다. ‘리딩 리듬(reading rhythms)’은 이 유행을 이끄는 단체로, 독서에 ‘파티’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열정적인 침묵이 한데 모일 때 파티만큼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라질까 걱정했던 독립 서점도 이례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서점 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422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전년 대비 31% 증가한 수치다.

살아남은 서점들은 각자의 개성을 생존전략으로 삼았다. 그래서 같은 책을 사도, 굳이 그곳에서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로어이스트 오차드가에 있는 피클 북스토어는 직접 만든 피클과 제작 스웨트셔츠를 판매한다. 웨스트빌리지의 스리 라이브스&컴퍼니(Three Lives&Company)는 사진 촬영과 소음으로 오염되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힘쓰고, 그린포인트의 서점 워드는 각자의 ‘최애’ 책을 통해 인연을 연결하는 게시판을 운영한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데이팅 앱의 프로필보다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책을 주제로 한 바에도 사람이 넘친다. 이스트빌리지의 ‘북클럽 바(bookclub bar)’는 ‘혼술’하며 독서하는 콘셉트로,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 방법은 단 두 가지다. 술을 한 잔 사거나, 책을 한 권 사거나. 책이 있는 공간에서는 좋은 대화가 시작되곤 한다. 한번은 곱슬머리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그 책 정말 좋아요. 내 친구가 번역을 맡았어요.” 그렇게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소설을 만났다. 같은 방식으로 폴 오스터의 신작과 덴마크 작가의 데뷔작, 1940년대에 나온 일본 종이접기 책 등 예상하지 못한 책을 접했다. 서점에서의 대화는 실패가 없다. 실패한다고 해도 이야기는 남는다.

인간다움은 목표를 향해 바로 뻗어나가기보다 에둘러 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으로 빚어진다. 마치 책이 그렇듯이. 우리는 두리번거린다. 요약된 인생이 아니라 우회하고 경유하는 삶을 사실 더 재미있어 한다. 직선보다는 구불구불한 서사,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 우연히 만나는 미지 같은 것을 말이다. 이것은 비단 서점만의 생존 전략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를 버티는 방법은 하루쯤 현대인답지 않게 사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쏟아지는 쉬운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 책은 그런 이들에게 세계보다 더 큰 사치를 약속한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도,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유지혜 작가(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