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가대표 AI 서두르고 몰아줘야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의 지갑엔 명함 크기로 코팅된 종이가 들어 있다. 이 종이엔 280명의 과학기술인과 관료 이름이 양면에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고 그 옆에 지장(指章)이 찍혀 있다 . ‘세대를 잇는 기술 대물림 : AI 주권수호 서약서’가 위에 크게 쓰여 있고, 아래엔 당시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과 류 차관의 서명이 있다.

이 카드는 ETRI 전신인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연구원들이 전전자교환기(TDX)를 국산화하기 위해 20년 전 다짐한 결의를 ‘소버린 AI’(인공지능 주권)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류 차관이 지난 4월 1일 만들었다. 한국은 TDX를 세계에서 열 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고, 지금의 통신 강국이 되는 발판이 됐다.

우라늄처럼 취급될 AI


정부가 소버린 AI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도구로 출발한 AI가 ‘국가 경제’가 돼가고 있어서다. AI에 올라탄 대만의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3.69%로 반세기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AI에 소외된 유럽연합(EU) GDP가 1년 전보다 0.3%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전혀 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AI가 이제 국가전략물자로 지위를 바꾸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4일 앤트로픽의 최신 AI 모델 수출을 통제하고 미국에 사는 외국인의 사용을 금지했다. 핵을 만들 수 있는 우라늄이나 첨단 반도체 등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AI 모델은 감시되고, 허가되고, 추적되고, 보호될 것이란 얘기다.

중국도 움직인다. 미국 정부 발표 직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즈푸AI는 최신 모델 오픈소스를 공개하기로 했다. 미국이 통제하면, 중국은 개방해 제3세계 국가들을 종속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국무원은 AI와 관련된 기술·용역·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금지하는 조치를 동시에 시행했다. 소스는 공개하면서도 데이터와 기술은 중국 안에 묶어두겠다는 뜻이다.

K-AI 선정 속도전 필요


한국이 한쪽에 종속될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처럼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AI 모델이 아직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미국 스탠퍼드대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AI에 미국(50개), 중국(30개)에 이어 한국(8개)이 3위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발판 삼아 국가대표 AI를 뽑아 지원한다는 ‘독자파운데이션모델’(독파모) 프로젝트에 힘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미·중이 움직이는 속도에 비해 너무 늦다.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모티프테크놀로지 등 4개사가 1차 평가를 마치고 살아남았는데, 8월부터 2차 평가에 들어간다. 각 단계에서 하나씩 떨어뜨려 내년에야 2개 안팎의 AI 모델이 남는다. 최종 선정은 이보다 많을 수 있다지만 한정된 정부 예산과 시장을 2~3개 AI 모델에 쪼개 주는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미국과 중국에선 AI 회사들이 대규모 상장을 앞두고 매주 강력한 신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키를 쥐고 있는 과기정통부가 ‘국가대표 AI’는 서둘러 뽑되, 지원은 몰아주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