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브 투르제만 라파엘 최고경영자(CEO)가 다음달 1일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해 열리는 ‘글로벌 방산 공급망 포럼 2026’에 키노트 연사로 참석한다. 이 소식에 국내 방위산업계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 이란과 전쟁 중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영 기업 수장이 해외 출장길에 오르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라파엘 CEO뿐 아니라 수석부사장, 아시아총괄 부사장, 구매총괄 부사장, 상임고문 등 부사장급 임원 네 명도 이번 포럼에 참석한다.
라파엘 경영진, 대거 한국 찾아
연 매출 10조원이 넘는 글로벌 방산기업 경영진이 한국을 대거 찾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몰려드는데 제품을 생산할 공장과 협력업체가 부족해서다. 라파엘이 확보한 누적 수주 잔액은 약 50조원. 향후 협력 가능 대상으로 보는 국내 제조업체만 1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이 자동차 공장을 ‘아이언돔’ 부품 공장으로 바꾸는 방안을 라파엘과 협의하고 있다”는 석 달 전 파이낸셜타임스 1면 기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조차 방산에서 돌파구를 찾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파엘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방산 기업 록히드마틴에서 차세대 블랙호크 헬기(X2) 개발을 총괄하는 중역이 ‘전략적 파트너십과 X2 기술’을 주제로 강연한다. 지난해 매출 58조원을 거둔 영국 BAE시스템스는 전자시스템 국제사업 담당 부사장이 연사로 나선다. 보잉, RTX, GE에어로스페이스, MBDA, IAI 등 글로벌 방산 메이저도 구매와 차세대 제품 개발에 관여하는 핵심 임원이 방한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르는 전쟁이 한국 기업 몸값을 밀어 올린다고 분석했다. 값싼 드론이 수백억달러짜리 전투기, 수십억달러짜리 미사일의 전략적 가치를 위협하는 시대다. 글로벌 방산 메이저들은 반도체와 자동차, 정보기술(IT) 등에서 축적된 정밀 제조 기술력이 기존 방산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K방산 도약, 첨단기술 융합 관건
일부 업체는 성과를 내고 있다. 포럼에서 방산 수출 모범 사례로 거론될 영풍전자는 전차 등에 들어가는 항법 장치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이다. 프랑스 방산업체 사프랑과의 사업 협력으로 최근 5년간 수출이 가파르게 늘었다. 수출은 수익성에 더 큰 영향을 준다. 국내외 방산 대기업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영풍전자 매출은 1410억원으로 5년 전보다 2.5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10배로 불어났다.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2020년까지 1% 안팎에 그치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상 무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0%에 육박했다. 정부가 수익을 보전해주던 내수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출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단면이다.
수년간의 미·중 패권 경쟁은 세계 무기산업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방산산업엔 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 만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이 그 기회를 잘 살리려면 방산을 무기 제조업에 가둬선 안 된다. 첨단 기술 산업 플랫폼으로 키워내야 한다. 스타트업과 민간 기업이 방산 생태계에 새로 들어올 수 있도록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방산도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