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올버즈와 캘리포니아의 실패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역마다 그곳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 같은 아이템이 있다.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가장 눈에 띈 건 ‘올버즈(Allbirds)’ 신발이었다. 둔탁한 디자인과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베이 에어리어 사람 열에 여덟은 올버즈를 신었다. 가볍고 착용감이 좋다는 실용성에 더해 천연·재활용 소재를 쓴다는 점도 ‘친환경’에 민감한 실리콘밸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약 5년이 지나 올버즈를 떠올린 건 영원할 줄 알았던 신발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회사는 지난 4월 아메리칸익스체인지그룹(AEG)에 헐값에 팔렸다. 한때 40억달러까지 커졌다가 3000만달러 수준으로 줄어든 기업가치가 올버즈의 현실을 말해준다.

친환경 목매다 몰락한 올버즈

올버즈가 무너진 이유는 망하는 기업의 공식 그대로다. 초기 성공에 취해 사업 영역을 레깅스부터 골프복까지 의류 전반으로 확장했다. 타깃 고객층이 불명확해졌고 편안한 친환경 신발이란 정체성은 약해졌다.

무엇보다 친환경 딱지만 붙이면 소비자가 무조건 사줄 것이란 경영진의 오판이 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든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환경 울 소재로 차려입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물건을 살 때 효용성과 가격을 먼저 따지고 나서 친환경 같은 신념은 뒤에 참고하는 사람의 본성을 간과했단 얘기다.

이런 실패는 기업 단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올버즈의 고향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와 캘리포니아주(州) 정부도 올버즈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주가 신기술의 요람, 창업의 낙원으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를 갖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연중 온화한 날씨,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등 지역 명문대에서 쏟아지는 인재, 기업과 자본이 몰리는 클러스터의 이점이 겹친 결과다.

분배 강조하다 망가지는 도시들

이곳에서 부를 일군 자산가들은 미국 최고 수준의 소득·법인세를 감내했다. 실리콘밸리의 선순환 효과를 높게 산 이유가 컸다. ‘내가 낸 세금이 인재에게 기회를 주고 인류 삶을 이롭게 한다’는 인식도 실리콘밸리를 지킨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캘리포니아주 노동조합과 좌파 정치인의 ‘분배 드라이브’는 도를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정을 떠받치는 이들을 지원하기는커녕 부(富)를 빼앗는 방법에 골몰하고 있어서다. 오는 11월 표결에 부쳐지는 ‘억만장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순자산 10억달러 이상 부유층에 자산의 5%를 일회성 세금으로 내도록 한 뒤 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을 확보한다는 법안이다. 캘리포니아에 살아야 할 이유를 잃은 기업과 자산가는 떠나고 있다.

다행인 건 진보색이 짙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9일 ‘고액 연봉 최고경영자(CEO)를 보유한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법안이 샌프란시스코 주민 투표에서 부결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기업·부자가 떠나고 도시가 무너지면 직업과 삶의 터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주민을 움직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신념’으로 포장된 정치색 짙은 구호보다 절박하다는 걸 이번 샌프란시스코 투표가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