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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인 타임’에서 인류는 25세 이후 성장이 멈춘다. 이후 삶은 손목에 새겨진 ‘시간 데이터’를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철저히 계급화한다. 수백 년의 시간을 확보한 부자는 영원한 젊음을 누리지만, 시간이 바닥난 이들은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극단적인 상상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세계관은 2026년 현재, 어쩌면 현실이 되고 있다. 몸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생체 시스템 자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재설계하려는 하이엔드 웰니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무병장수의 삶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킹하는 이른바 ‘바이오해킹’이다.

과거 웰니스가 운동과 명상, 유기농 식단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다면, 바이오해킹은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공격적이다. 핵심은 철저한 수치 관리다. 바이오해커들은 수면 시간과 심박 변이도(HRV), 혈당, 생체 나이까지 실시간으로 측정하며 몸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이들에게 건강은 한때의 컨디션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퍼포먼스 자산’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다. 정보기술(IT) 사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장기 나이를 젊게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원을 투자하며 수면·식단·운동 데이터를 분 단위로 통제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노화는 질병이며, 치료할 수 있다”는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철학도 바이오해킹 시장에 불을 붙였다.

더 이상 바다 건너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얘기도 아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젊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바이오해킹 기반의 하이엔드 웰니스 바람이 거세다. 손목엔 건강 관리를 위한 첨단 디바이스를, 팔에는 연속혈당측정기(CGMS)를 부착한 채 자신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은 기본이다. 크라이오테라피와 고압산소체임버, 적외선 사우나 같은 첨단 회복 프로그램과 고가의 줄기세포 시술도 더 이상 프로 운동선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들은 ‘저속 노화’를 넘어 ‘역노화’에 도전하고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제 몸의 시간을 되돌리는 첨단 기술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부(富)의 상징은 슈퍼카나 통장 잔액이 아니라 손목 위 데이터가 증명하는 ‘신체 나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노화는 순리 아닌 관리 영역…몸의 OS 해킹, 생체 시계 되돌린다
바이오해킹이 바꾼 웰니스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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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저택. 대부분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40대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의 하루는 이미 시작됐다. 눈을 뜨자마자 모닝 커피를 찾는 대신 자신의 장기 상태를 확인한다. 간 수치, 염증 반응, 수면 효율, 혈당 곡선, 장내 미생물 변화까지. 하루 동안 측정하는 ‘바이오마커’(생체 지표)만 수백 개에 달한다. 그는 스스로를 “역사상 가장 많이 측정된 인간”이라고 부른다. 목표는 신체 나이를 18세로 되돌리는 것. 젊어지기 위해 아들의 혈장까지 주입한 그는 최근 저용량 리튬과 NAD+ 등 신물질로 ‘셀프 실험’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가민 커넥트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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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인공지능(AI)과 우주로 향했다면, 새로 떠오른 타깃은 인간 신체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몸의 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시도다. 젊은 테크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른바 ‘바이오해킹(biohacking)’은 최근 글로벌 웰니스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과거 웰니스가 휴식과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엔 데이터를 기반으로 몸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자신의 몸을 해킹한다

바이오해커들에게 운동은 필수다. 다만 목표는 단순한 체중 감량이나 근육 증가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록스(HYROX)다. 1㎞ 러닝과 고강도 기능성 운동을 8회 반복하는 경기로, 지구력과 폭발적인 근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참가자는 최대산소섭취량, 심박수, 운동 수행 능력 등을 수치로 기록하며 자신의 신체 능력을 관리한다. 단순한 운동이라기보다 몸의 성능을 측정하고 개선하는 과정에 가깝다.

삼성 갤럭시 워치8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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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이 목표는 아니다. 핵심은 회복과 지속 가능성이다. 바이오해커의 필수 아이템인 스마트워치와 스마트링은 걸음 수와 운동량을 넘어 수면의 질, 심박변이도(HRV), 스트레스 지수, 회복도까지 측정한다. 몸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날에는 운동 대신 휴식을 권하고, 수면 점수가 낮아진 날에는 전날의 음주·카페인 섭취와 스트레스 요인을 되짚게 한다. 연속혈당측정기(CGM)를 팔에 부착해 혈당 반응을 실시간 추적하는 이도 늘고 있다. 원래 당뇨 환자용 기기였지만 최근에는 건강한 2030세대까지 사용층이 확대되는 추세다. 우창윤 윔클리닉 원장은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의 몸이 어떤 음식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고 대응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생체 나이를 낮춰라”

스마트 반지 ‘오우라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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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데이터는 ‘생체 나이’다. 주민등록상 나이 대비 실제 세포가 얼마나 늙었는지를 추적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와 후성유전학(epigenetics) 분석이 동원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지표가 염색체 끝부분인 텔로미어로, 길이가 짧아질수록 노화가 많이 진행된 것으로 본다. 신용등급을 조회하듯 자신의 노화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 미국과 중동의 초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줄기세포 주사, NAD+ 수액, 펩타이드 스택(peptide stack), 노화 호르몬 관리 프로그램 등도 국내에서 속속 확산되는 추세다.

AI도 다양하게 접목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바이오해커에게 ‘꿈의 기술’로 꼽힌다. 최근 국내에서 관련 특허를 등록한 제노시스AI헬스케어의 이희원 대표는 “유전자, 혈액 데이터, 장기 상태 등을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특정 약품이나 시술 전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 수 있다”며 “가상 생체 실험이 보편화되면 인간의 노화는 더욱 완벽한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정소람/권용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