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에 지친 당신에게 교토 정원이 건넨 위로
300년 된 왕족 별장
日 '가쓰라리큐'
연못 중심에 둔 '지천회유식' 정원
모양 제각각인 디딤돌이 걸음 늦춰
다다미, 동양 건축 개방성 보여주고
월견대선 호수에 투영된 자아 발견
여백 가득한 공간서 강박 해소 시간
日 '가쓰라리큐'
연못 중심에 둔 '지천회유식' 정원
모양 제각각인 디딤돌이 걸음 늦춰
다다미, 동양 건축 개방성 보여주고
월견대선 호수에 투영된 자아 발견
여백 가득한 공간서 강박 해소 시간
발밑에서 시작되는 명상
비움과 수용의 정수를 보여주는 가쓰라리큐는 역설적이게도 최고 권력자인 왕족의 별장이다. 그럼에도 화려한 장식 대신 시골 농가처럼 검소한 양식과 재료를 선택했다. 17세기 초 에도 시대, 쇼군들이 화려한 장식으로 권력을 과시할 때 왕족은 정반대로 절제를 택한 것이다. 가공하지 않은 원목과 소박한 흙벽을 활용한 이 의도된 소박함은 진짜 고귀함이 외형에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자신을 증명하느라 지친 이에게 자연의 일부로 가만히 지워지기를 선택한 별장의 검소함은 거대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여기엔 생애 단 한 번뿐인 순간을 뜻하는 ‘일기일회’의 감각이 흐른다. 뺨을 스치는 바람과 햇살은 오직 지금의 찰나에만 허락된 선물이다. 이 정원은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다 보여주지 않는다. 굽이진 길을 도는 순간 새로운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미래를 완벽히 통제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매 순간 다가오는 의외성과 마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용기
정원에도 달을 바라보는 전용 공간 ‘월견대’가 있다. 이곳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연못 수면 위로 수천 개 보석처럼 부서졌다가 다시 모이는 달빛의 일렁임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다. 밤길을 밝히는 석등의 높이를 사람 무릎 정도로 낮게 설치한 세심함도 놀랍다. 주인공인 달빛을 방해하지 않고, 호수에 투영된 그림자를 깨뜨리지 않기 위한 의도된 배려다. 어쩌면 인간도 마찬가지다. ‘에고’(자아)라는 석등의 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가려져 있던 삶의 본질이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300년 전 건축의 유연함
가쓰라리큐가 틀에 박힌 현대 건축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개방성’에 있다. 미닫이문만 열면 방과 정원의 경계가 단숨에 허물어진다. 규칙과 질서라는 단단한 내면을 갖추되 외부의 변화는 거부감 없이 유연하게 수용하는 구조다. 서구 건축가들이 감동한 ‘견고한 중심’과 일본인이 사랑한 ‘불완전한 찰나’가 만나는 곳, 완벽한 균형을 갖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만의 질서를 내면에 품고 있다면 외부에서 유입되는 잠깐의 소음 정도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매 순간 갓생을 증명하고 인생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강박은 결국 스스로를 소음 가득한 콘크리트 박스 안에 가두는 것과 다름없다. 나의 빈틈과 실패 가능성을 담담히 포용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 숨을 쉴 수 있는 여백이 피어난다. 오늘도 머릿속을 꽉 채운 수많은 미래 계획,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를 잠시 멈춰 보자. 그러면 구름에 가린 달이 어느새 이렇게 속삭일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조지아 조지아컴퍼니 대표(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