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많이' 파는 나라에서 '비싸게' 파는 나라로
1분기 명목 GDP 증가율 10.5%
수출품 많이 팔린 영향도 있지만
수출 가격이 놀라운 속도로 상승
K반도체부터 차, 조선, 라면까지
이제 해외에서 고가 상품군 진입
한국의 위상과 체력을 한층 높여
고경봉 편집국 부국장
수출품 많이 팔린 영향도 있지만
수출 가격이 놀라운 속도로 상승
K반도체부터 차, 조선, 라면까지
이제 해외에서 고가 상품군 진입
한국의 위상과 체력을 한층 높여
고경봉 편집국 부국장
GDP는 한 나라의 모든 경제주체가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 부가가치의 합이다. 조금 단순화해 보면 실질 GDP는 물건과 서비스를 얼마나 더 만들어 팔았는지를 갖고 계산한다. 우리나라가 작년 100개의 물건을 팔고, 올해는 110개의 물건을 팔았다면 연간 실질 GDP 증가율은 10%다. 명목 GDP는 여기에 GDP디플레이터, 즉 가격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물건 가격이 작년 개당 100원이었는데 올해 110원이 됐다면, 판매량 증가분(10%)에 가격 상승분(10%)을 곱한 명목 GDP 증가율은 21%가 된다. 지난 1분기에 이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의미하는 GDP디플레이터가 이례적으로 폭등하면서 실질 GDP와 명목 GDP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 1980년대 초반에도 GDP디플레이터가 이렇게 높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국내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영향이었다. 오일쇼크와 농산물 흉작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웃돌던 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 안팎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GDP디플레이터는 10%나 뛰었다. 국내 물가가 아니라 수출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1분기 해외에서 우리 제품과 서비스가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그 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올랐고 그게 역대급 GDP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 기업 제품의 수출가격은 최근 수년간 이례적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GDP디플레이터의 추이를 보면 명확하다. 2020년 초반까지만 해도 GDP디플레이터는 매년 평균 1~2% 수준이었다. 우리 수출이 안 좋을 때는 마이너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 4.2%, 지난해 3.2%로 튀어 올랐다. 급기야 올해는 두 자릿수를 찍을 조짐이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한국의 GDP디플레이터 상승률이 10%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다른 주요국 GDP디플레이터는 모두 2% 안팎으로 전망한다. 전 세계에서 한국 제품만 유독 가격이 뛰고 있다는 얘기다. 1분기 GDP는 한국은 ‘많이’ 파는 나라에서 ‘비싸게’ 파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숫자다.
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끈 주역은 물론 반도체다. 주요 제품 가격이 최근 1년 사이 70~80% 올랐다. 과거 저가 D램을 만들 때와는 가격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호황기에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률이 10~20%에 그쳤다. 지금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등 고가 제품군을 생산하면서 영업이익률이 40~70%를 넘나든다.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K’가 붙은 제품은 고가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20년 전 1만달러 안팎이던 우리 자동차 평균 수출 가격은 최근 2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조선사의 주력 제품 가격은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올랐다. 화장품, 식음료 같은 소비재도 그렇다. 마스크팩, 기초화장품 중심이던 K뷰티 수출 품목은 2~3배 비싼 기능성 화장품과 프리미엄 스킨케어 제품으로 바뀌고, 한국 라면은 해외에서 마루찬 같은 일본의 주력 라면보다 4~5배 비싼 값에 팔린다.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자 한국 기업의 제조업 인프라와 인력, 노하우는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수출 가격이 뛰고 교역 조건이 개선되면 국가의 위상과 체력은 달라진다.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더라도 비싼 제품을 파는 기업은 더 오래 버티고, 그게 국가를 외부 충격에도 흔들림 없이 지탱한다. 그 길을 지금 우리 기업들이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