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과 기대심리
원·달러 환율이 단숨에 1500원을 훌쩍 넘어섰다.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주가 변동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다. 최근 환율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유가증권시장과 외국인 투자자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국인 투자자 보유 주식 평가액이 주가 상승으로 크게 증가하면 차익실현 혹은 포트폴리오 위험 관리 차원에서 주식을 매도하고 그 대금을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오른다는 것이다. 초단기 환율 급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초단기 현상 분석만으로는 정책적 시사점을 얻기 어렵다. 환율 변화의 기저 요인에 대한 큰 그림을 놓치기 십상이다.

원화 약세 기조는 2021년 초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의 누적 상승률은 40%에 이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추산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절하된 수준이다. 최근의 환율 급등락도 이런 추세선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수년째 계속되는 원화 약세를 이해하려면 달러화 강세 여부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요인을 살펴야 한다. 2021~2022년 원화 약세는 상당 부분 달러화 강세를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같은 기간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화 지수가 13% 상승(달러 강세)하면서 원화 약세를 주도했다. 그러나 2022년 9월 이후 달러화 지수가 하락세로 반전해 올해 5월까지 11% 하락(달러 약세)을 기록한 점에 비춰 적어도 2023년 이후 원화 약세 기조는 국내 요인이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화 약세의 국내 요인으로는 한·미 금리 역전, 성장 하락, 금융 국제화 및 기대심리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우리 기준금리는 2022년 9월 이후 거의 4년째 미국 기준금리 대비 1%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평균 경제성장률도 과거 10년 기간 중 코로나19 팬데믹(2020~2021년)을 제외하고 전반부(2016~2019년)와 후반부(2022~2025년)로 구분하자면 각각 연 3.0%, 연 1.8%다. 큰 폭의 성장 둔화가 원화 약세 시기와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 국제화는 원화 약세의 저변에 자리 잡은 요인이다. 2025년 말 기준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금융자산과 대외금융부채는 각각 154%, 105%에 이른다. 불과 10년 전인 2015년 각각 74%, 61%이던 점을 감안하면 금융 국제화 속도가 상당히 빠른 셈이다. 대외자산(내국인의 해외 투자) 증가는 원화 약세, 대외부채(외국인의 국내 투자) 증가는 원화 강세 요인이다. 동시에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확대될수록 차익실현 혹은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단기적인 환율 상승 압력이 발생할 여지도 커진다.

주요 7개국(G7)의 GDP 대비 대외자산 및 부채 평균 규모는 2025년 말 기준 각각 314%, 298%로 우리나라의 2~3배다. 앞으로도 내국인의 해외 투자와 외국인의 국내 투자 수요 모두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금융 국제화는 국가 경제 차원의 위험 분산(risk diversification)이라는 편익을 제공하지만 자본 유출입의 환율 결정력을 높이고 자산 가격 충격 발생 시 환율과 대외건전성의 변동 폭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다.

미래 환율의 기대심리는 현재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환율은 본질적으로 원화라는 자산 가격이다. 주가와 마찬가지로 기대심리에 민감하고 ‘원화 약세’라는 구조적 요인이 이 기대심리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상수지와 코스피지수 대약진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단기 외환 수급 불균형을 넘어 기조적인 원화 약세 기대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의 환율 불안이 물가를 포함한 거시금융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정책당국은 조속히 기대심리 안정에 나서야 한다. 아무리 단호해도 구두 개입만으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신뢰할 행동이 필요한 이유다. 통화정책 조정, 거시금융 감독 강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소통 등 정공법만이 기대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