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국 선박금융에 손벌리는 한국 해운사들
“국내 은행 문턱이 너무 높아 중국 금융회사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중소 해운업체 관계자는 국내 선박금융 시장이 중국에 급속히 잠식당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25년 선박금융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선사 조달 선박금융 중 외국계 비중은 66%에 달했다. 이 중 중국 점유율이 31%로 2022년(5%) 대비 여섯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국내 해운사들이 중국 금융사에 안방을 내주고 싶어서 손을 벌리는 게 아니다. 국내에 선박금융을 융통해 줄 금융사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배 한 척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해운사는 배를 100% 자기 돈으로 사지 않는다. 은행이나 정책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 배를 주문하고, 벌어들인 화물운임으로 갚는다. 선박금융의 역할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선박금융 시장에 국내 시중은행은 보이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겪은 대규모 손실 사태 이후 관련 부서를 해체 수준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게 ‘국수국조(國需國造·자국 선박은 자국에서 건조)’를 앞세운 중국 선박금융이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정책금융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금융사는 자국 조선소에 배를 발주하는 조건으로 배값의 95%까지 빌려준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국내 중소 해운사가 유혹을 떨쳐버리기란 불가능하다. 국내 선박금융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이 2년 만에 여섯 배로 뛰어오른 이유다.

중동 전쟁으로 해운업이 국가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음은 다시 한번 확인됐다. 해운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선박금융 역시 경제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핏줄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 해양 선진국 금융사들이 극심한 시황 변동 속에서도 리스크를 관리해 가며 선박금융을 키우는 이유다. 업계에서도 “대형 시중은행이 해양금융 전문 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인력을 파견해 ‘해양 금융통’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 자금을 끌어들일 ‘룰 세팅’도 필수다. 2002년 도입된 공모형 선박 펀드는 2015년 세제 혜택(배당소득 분리과세) 일몰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시중 자금이 선박 등 건전한 산업 자산으로 흐를 수 있게 물길을 다시 열어줘야 한다. 최근 주목받는 토큰 증권(STO)을 선박금융에 적용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도 대안이다.

조선업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매섭다. 그런데도 정부는 반도체산업에는 국가 안보를 내세워 전폭적인 혜택을 아끼지 않으면서, 경제 안보의 핵심인 해운업 지원에는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이대로라면 중국 금융사의 배만 불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