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안의 외계 행성, 망기스타우를 아시나요 [김새봄의 미식 스프링노트]
대자연 속 특별한 카자흐스탄 여행
자연과 나 사이에 실오라기 하나 두지 않고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들. 살갗을 한올한올 파고드는 거친 바람과 텐트 안에 누우면 정면으로 후드러지게 쏟아지는 빗줄기, 발밑에서 부서지는 수만년전 적갈색 흙을 온몸으로 맞으면 신의 압도적인 권능 앞에서 한없이 작고 겸허한 인간의 존재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흐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알마티를 통해 카자흐스탄을 만난다.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과 에메랄드빛 호수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다. 유럽의 산악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자연을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 직항 노선 확대와 함께 여행 정보가 늘어난 점 등은 최근 몇 년 사이 카자흐스탄이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하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카스피해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 순간, 카자흐스탄은 또 다른 풍경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무대가 바로 서부 망기스타우다.
수백 킬로미터가 끝없이 펼쳐진, 그러나 매 순간 전혀 다른 얼굴을 들이미는 변화무쌍한 '본 투 비(Born to be)' 지구의 민낯. 대충 셔터를 눌러도 비현실적인 인생 사진이 쏟아지는 광활함 속에서도, 그 벅찬 감동을 작은 프레임에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 렌즈를 들이미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는 아우라다. ‘아름답다’보다는 ‘압도된다’는 묘사가 훨씬 어울리는 곳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의 '넥스트 레벨(Next Level)', 그 미지의 영역 어딘가에 망기스타우가 있다. 인생에 권태기나 이른바 '현타'가 찾아온 이들에게 누구보다 이곳으로의 여행을 주저 없이 강력히 권하고 싶다.
‘살아있는 지형 박물관'. 시간이 조각한 겹겹의 대지 망기스타우
① 망기스타우의 지질 명소 토리시(Torysh)
② 코칼라(Kokala)
③ 고대 바다의 퇴적층인 아이락티(Airakty-Shomanai Valley)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경은 가장 지구다운 이야기, 즉 바다가 물러가고 대륙이 솟아오르며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투즈바이르는 풍경이라기보다 지구가 남긴 오래된 기억에 가깝다.
⑥ 보즈지라(Bozzhyra)로 가는 길
⑦이 비현실적인 지층의 마법은 보즈지라(Bozzhyra)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⑧'티라미수 협곡'이라는 달콤한 애칭이 붙은 키질쿱(Kyzylkup)
멀리서 볼땐 달콤한 케이크 같지만, 가까이 가면 그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빗물의 흔적뿐인 흙더미다. 곳곳이 쩍쩍 갈라져 발이 푹푹 빠지는데 바람이 일렁일때마다 생각치 못한 짙은 풀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이 척박한 틈새를 뚫고 꿋꿋이 살아남은 야생 허브들이다. 척박한 땅 속에서 오히려 강렬한 향기를 뽐내며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하는 모습은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낮은 언덕뿐인 키질쿱 사이는 유독 바람이 거세다. 나무도, 건물도, 인간의 흔적도 없는 공간에서 바람은 아무런 방해 없이 대지를 가로지르며 수십km 이상 방해없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협곡과 언덕을 타고 넘고 통과하면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낮에는 시야가 일렁일 만큼 햇살이 내리쬐다가도, 붉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한기가 불쑥 몰려온다.
거센 바람을 뚫고 빠르게 캠프를 차리고 저녁을 먹은 뒤 취침 준비를 한다. 나무가 없으니 벌레도 거의 없다. 덕분에 바람은 매섭게 불지언정, 그 어떤 곳에서의 캠핑보다도 쾌적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척박한 대지가 빚어낸 유목민의 생활이 짙은 밥상
시각적인 웅장함과 짜릿한 체험의 뒤편에는, 거친 대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유목민들의 짙은 식탁이 기다리고 있다. 넓은 초원을 누비며 생존해 온 이들의 식문화는 기교 없이 직관적이며,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카자흐스탄을 넘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샤슬릭(Shashlik)'은 유목민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소울푸드(soul food)다. 두툼하게 썰어낸 고기를 긴 쇠꼬치에 꿰어 뜨거운 숯불 위에서 직화로 구워내는데, 숯불로 뚝뚝 떨어지는 기름이 피워내는 짙은 연기가 고기에 깊게 스며든다. 수만평 너른 초원에서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자란 가축들이기에 구웠을 때 입안 가득 팡팡 터지는 원초적인 불향과 육즙은 그 어떤 파인다이닝도 흉내낼 수 없다.
뜻밖의 피자 천국, 유목민의 대지가 빚어낸 압도적 유제품
카자흐스탄 여행 중 마주하는 신선한 충격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피자’다. 평범한 동네 카페나 펍 어디를 가도 한국 식당의 계란말이처럼 자연스레 피자를 파는데, 이름 모를 식당에서 대충 시킨 피자조차 웬만한 프리미엄 피자를 뛰어넘는 ‘인생 피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