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에게 '선택 받아야' 한다…'명품'의 아이너리 [리사킴의 아뜰리에 노트]
럭셔리 시장의 본질을 묻다
하이엔드 시계 시장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브랜드 로고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기술력, 희소성과 상징성을 함께 구매한다. 남성들은 롤렉스(Rolex)를 기본으로 파텍 필립(Patek Philippe), 리차드 밀(Richard Mille),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등을 선호하고, 여성들은 까르띠에(Cartier)와 쇼파드(Chopard), 브레게(Breguet) 등을 즐겨 찾는다. 최근에는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정교한 무브먼트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필자 역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오랜 시간 시계를 함께 컬렉팅해왔다. 그런데 최근 하이엔드 시장의 또 다른 민낯을 경험하게 됐다. 마음에 두고 있던 클래식한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잠실의 한 백화점 명품관을 방문했다. 상담 과정에서 현금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결제하면 추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상품권 할인과 백화점 프로모션을 함께 적용하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결제 과정에서 발생했다. 상품권 업체에 현금을 이체하는 과정에서 설명받은 할인율과 실제 적용된 금액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브랜드와 백화점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세부 금액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고, 뒤늦게 실제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사과는 받았지만 이미 신뢰는 무너진 뒤였다.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시계 역시 반품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고액의 상품을 구매하면서도 세부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소비자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의 제품을 판매하는 하이엔드 시장에서조차 고객 신뢰보다 매출이 우선되는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품보다 ‘매니저에게 선택받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난다. 원하는 제품을 빨리 구매하기 위해 관계를 관리하고, 일부 직원들은 브랜드의 권위를 자신의 권위처럼 사용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명품의 본질은 고객의 삶을 빛내는 데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와 장인정신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고객이 브랜드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휘둘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건강한 럭셔리가 아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결국 고객이 만들고 유지해주는 것이다. 고객의 신뢰와 품격이 사라진 명품은 언젠가 그 가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브랜드가 우위에 서는 시장이 아니라, 고객의 기준과 품격이 존중받는 하이엔드 시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