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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칩이 아니었다…월가가 찜한 '새로운 석유' 정체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CME·ICE, 'AI 컴퓨트 선물' 출시 추진
GPU 임대료 기초자산으로
"컴퓨트, 21세기 새로운 석유"
GPU 임대료 기초자산으로
"컴퓨트, 21세기 새로운 석유"
세계 최대 원자재 시장은 석유입니다. 원유와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같은 석유제품까지 실물 수요도 크지만, 그 수십 배 규모로 선물·옵션 같은 금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거대한 투자 시장이 됐습니다. 1983년 뉴욕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상장된 이후 석유는 실물 에너지 자원을 넘어 독립적인 금융 자산이 됐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대표 원자재는 무엇이 될까요. 월스트리트가 점찍은 건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 칩도, 메모리 반도체도 아닙니다. GPU 칩이 만들어내는 연산능력, 즉 '컴퓨트'입니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거래소 CME그룹과 뉴욕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ICE는 최근 잇달아 'AI 컴퓨트 선물 시장' 출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초자산은 GPU 가격이 아니라 GPU 임대료, 더 정확히는 GPU를 가동해 확보할 수 있는 컴퓨트의 가격입니다. 테리 더피 CME CEO는 “컴퓨트는 21세기의 새로운 석유”라며 “AI 모델을 훈련하고, 거래를 청산하며, 데이터 바이트를 처리하는 모든 활동의 기반은 컴퓨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팅 파워 그 자체가 자산군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유가 산업 경제를 돌리는 핵심 투입재였듯, 지금 AI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투입재는 컴퓨트입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는 이제 이 연산능력 자체에 가격을 붙이고, 급등락 위험을 헤지하며, 투자자들도 직접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번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에서는 AI 컴퓨트 선물 시장의 등장이 투자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봅니다. 핵심은 단순히 GPU 임대료에도 베팅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메리츠증권은 "AI 인프라 투자가 내러티브의 영역에서 검증 가능한 숫자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선물계약이 생긴다는 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GPU 임대료나 클라우드 컴퓨트 비용, AI 모델을 훈련시키고 추론을 돌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 모두 표준화된 기준가격이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세대 GPU라도 지역, 예약 여부, 네트워크 품질 등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가격 변동성도 큽니다.
선물시장이 생기면 AI 컴퓨트에도 원유 선물처럼 3개월 뒤, 6개월 뒤, 1년 뒤 가격이 생깁니다. 이것은 GPU를 빌리는 AI 기업에는 예측 가능한 비용·원가,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사업자에는 매출 단가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메리츠증권의 황수욱 애널리스트는 "AI 인프라 투자가 막연한 선제 투자가 아니라, 미래의 구체적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GPU가 아닌 연산능력을 상품화하는 이런 시도는 투자자들이 지금의 AI 사이클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이제 관건은 단순히 GPU를 많이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그 GPU로 얼마나 많은 연산능력을 뽑아내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가 되고 있습니다. AI 투자 사이클이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컴퓨트 선물의 등장이 시장과 AI 랠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AI 인프라 투자의 다음 사이클에서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무엇일지, 이것이 또다른 AI 버블의 징후는 아닐지. AI 시대 새로운 원자재 탄생의 뜻을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