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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마이너스 버텼다…한국의 워런 버핏 '4조 잭팟' 비결
대가들의 투자철학-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멀티플 높은 주식은 유의해야"
한국의 '1세대 가치투자자'로 이름 알려
좋은 기업 샀으면 버티는 인내심 필요
기업 성장이 곧 수익 보장하지 않아
'기대치의 함정' 경계해야
"멀티플 높은 주식은 유의해야"
한국의 '1세대 가치투자자'로 이름 알려
좋은 기업 샀으면 버티는 인내심 필요
기업 성장이 곧 수익 보장하지 않아
'기대치의 함정' 경계해야
"고통의 시간를 무협지를 읽으며 버틴 투자자"
샐러리맨을 꿈꾸던 평범한 경영학도가 증권사에 발을 들인 건 1988년이다. 그렇게 '가치투자 1세대'이자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던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의 수익률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는 1997년 IMF의 칼바람 속에서도 수익을 냈고, 1999년 닷컴 버블의 광풍 속에서 모두가 코스닥을 외칠 때 홀로 '가치 투자'를 지켰다.
다만 그 과정이 결코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귀에 물이 차고,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이 의장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잃지 않는 투자' 내지는 '가치 투자'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원칙이었다.
혹자는 투자 대가들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지만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승리 공식'보다 그들이 패배의 문턱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에 대한 '회복탄력성'이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누적 수익률 1400%를 달성한 이 의장은 2014년부터 6년간 누적 수익률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 의장의 투자 철학에 대해 '이제는 시대를 지나간 투자법'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가치투자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이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10만원대에 매입한 롯데칠성 주가가 5만원대로 폭락할 때도 그는 그 자리를 지켰고, 결국 수백 배의 성장(240만원)을 목격했다. 증권사에 처음 발을 디딘 30년이 지난 지금, 이 의장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제자들과 함께 '라이프(LIFE·Longterm Investment For Everyone)'라는 이름으로, 후대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자본시장의 최전선에 섰다.
라이프자산운용의 운용 자산 규모는 4조원을 훌쩍 넘는다. 창립 이후 약 4년10개월 만의 성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6월 출범 당시 약 1000억원 수준의 자산 규모로 시작한 라이프운용의 운용 자산은 지난달 29일 기준 4조2237억원으로 불어났다. 급성장의 배경에는 연초 릴레이로 설정된 신규 펀드가 있다. 라이프운용은 올 들어 라이프 VAIO 1·2호(약 1300억원), 라이프 Diligent 1·2호(약 500억원)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다음은 이 의장과 일문일답.
▶이 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가치투자’란 무엇인가요.
"'잃지 않는 투자'입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남긴 두 가지 원칙, "첫째, 돈을 잃지 말 것.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 것." 이 짧은 문장에 제 30년 투자 인생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시장이 과열될 때 남들처럼 휩쓸리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이 정말 쌀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가치투자는 지루하고 외롭습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견디는 과정이 곧 수익으로 치환됩니다. 남들이 다 버릴 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게 투자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같은 가치투자라도 방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싼 주식을 기다리는 '수동적 투자'에서 지금은 '기업을 변화시키는 투자'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싸고 좋은 주식을 사서 시장이 알아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면 지금은 기업과 적극적으로 '대화'합니다. 그동안 제가 밸류 트랩(Value Trap)에 빠진 뼈아픈 이유는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싸도 주주를 무시하는 기업은 주가가 오를 수 없거든요."
"저는 이제는 주주로서 기업을 찾아가 경영진을 직접 만납니다. '주주들에게 왜 소통하지 않으십니까?', '자본 재배치를 통해 성장을 도모할 생각은 없으십니까?'라고 묻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그 기업이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컨설팅'입니다. 이제 가치투자는 기다림을 넘어, 주주가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과정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배성수/전예진 기자
샐러리맨을 꿈꾸던 평범한 경영학도가 증권사에 발을 들인 건 1988년이다. 그렇게 '가치투자 1세대'이자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던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의 수익률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는 1997년 IMF의 칼바람 속에서도 수익을 냈고, 1999년 닷컴 버블의 광풍 속에서 모두가 코스닥을 외칠 때 홀로 '가치 투자'를 지켰다.
다만 그 과정이 결코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귀에 물이 차고,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이 의장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잃지 않는 투자' 내지는 '가치 투자'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원칙이었다.
혹자는 투자 대가들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지만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승리 공식'보다 그들이 패배의 문턱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에 대한 '회복탄력성'이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누적 수익률 1400%를 달성한 이 의장은 2014년부터 6년간 누적 수익률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 의장의 투자 철학에 대해 '이제는 시대를 지나간 투자법'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가치투자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이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10만원대에 매입한 롯데칠성 주가가 5만원대로 폭락할 때도 그는 그 자리를 지켰고, 결국 수백 배의 성장(240만원)을 목격했다. 증권사에 처음 발을 디딘 30년이 지난 지금, 이 의장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제자들과 함께 '라이프(LIFE·Longterm Investment For Everyone)'라는 이름으로, 후대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자본시장의 최전선에 섰다.
라이프자산운용의 운용 자산 규모는 4조원을 훌쩍 넘는다. 창립 이후 약 4년10개월 만의 성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6월 출범 당시 약 1000억원 수준의 자산 규모로 시작한 라이프운용의 운용 자산은 지난달 29일 기준 4조2237억원으로 불어났다. 급성장의 배경에는 연초 릴레이로 설정된 신규 펀드가 있다. 라이프운용은 올 들어 라이프 VAIO 1·2호(약 1300억원), 라이프 Diligent 1·2호(약 500억원)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다음은 이 의장과 일문일답.
▶이 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가치투자’란 무엇인가요.
"'잃지 않는 투자'입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남긴 두 가지 원칙, "첫째, 돈을 잃지 말 것.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 것." 이 짧은 문장에 제 30년 투자 인생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시장이 과열될 때 남들처럼 휩쓸리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이 정말 쌀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가치투자는 지루하고 외롭습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견디는 과정이 곧 수익으로 치환됩니다. 남들이 다 버릴 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게 투자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같은 가치투자라도 방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싼 주식을 기다리는 '수동적 투자'에서 지금은 '기업을 변화시키는 투자'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싸고 좋은 주식을 사서 시장이 알아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면 지금은 기업과 적극적으로 '대화'합니다. 그동안 제가 밸류 트랩(Value Trap)에 빠진 뼈아픈 이유는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싸도 주주를 무시하는 기업은 주가가 오를 수 없거든요."
"저는 이제는 주주로서 기업을 찾아가 경영진을 직접 만납니다. '주주들에게 왜 소통하지 않으십니까?', '자본 재배치를 통해 성장을 도모할 생각은 없으십니까?'라고 묻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그 기업이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컨설팅'입니다. 이제 가치투자는 기다림을 넘어, 주주가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과정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이채원 의장의 인터뷰 전문은 한경의 온라인 유료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배성수/전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