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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이 만든 특별한 식탁…에트나가 만든 풍경 [박은새의 유별난 브랜딩]
활화산이 식탁이 되는 곳, 에트나
논나의 맛 비결을 찾았다
돌로 지어진 고성 같은 농가를 토스카나에서 처음 접하고 이탈리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날 기회가 되면 아그리투리 스모(agriturismo, 이탈리아식 농장 숙박)를 계속 찾게 된다. 머무는 동안 그 땅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직접 기른 올리브로 짜낸 올리브오일을 비롯해 논나의 레시피로 차려진 식탁에서 떼루아의 축복을 만끽한다.에트나 근처 ‘La Fattoria Dei Nonni’. 논나(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의 농장이라는 뜻이다. 아침 식사가 훌륭하다는 후기가 많아 고민 없이 예약했다. 도착하자 어두컴컴해진 숙소 근처에는 저녁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예약을 미리 못 했음에도 호스트는 토마토 파스타를 내어준다. 오랜만에 맛보는 순도 높은 토마토 소스다. 한국에서 본토의 맛을 최대한 내려고 토마토를 장시간 오븐에 굽고 냄비에 끓이곤 한다. 논나의 비결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날까. 호스트 안젤라(Angela)는 준비된 게 없다면서도 이것저것 계속 내어준다. 식당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 논나의 손맛과 손님을 가족처럼 환대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나 보다.
청량하고 맑은 아침 공기 덕분일까, 슬라이스 햄과 치즈조차 신선하다. 어제저녁의 소박하지만 풍성한 기운이 아침 식탁에도 흘러넘친다. 활기 넘치는 아침상만으로 이미 에트나 산을 다녀온 것 같다. 살아 숨 쉬는 활화산의 지질 작용이 토양의 비옥함과 탐스러운 농산물의 비결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이었다.
예측불허 에트나, 날씨 요정은 어디에?
에트나 화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카타니아에서부터 헬리콥터 투어를 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 산 아래에 서 케이블카로 올라가 원하는 구간만큼 트레킹을 한다. 활동 중인 화산이므로 당일 날씨에 따라 운영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오늘은 흐린 날씨 때문에 케이블카가 멈춰 있다. 투어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가이드는 "올라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이라며 동굴 투어를 추천한다.기상은 염원과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티베트 남초 호수에서 아무것도 못 보고 내려왔었다. 24시간 기후와 고산증에 혹독하게 시달리기만 했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일까. 올라가 보기로 한다. 케이블카로 바라보는 에트나의 모습도 멋있겠지만, 버스 높이만 한 좁은 빙벽 사이를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경험이 꽤 흥미롭다. 케이블카로 도달했어야 할 2500m 지점에 내린 뒤, 더 올라가기 위해 설상차로 갈아탔다.
탱크처럼 생긴 사륜구동 무한궤도 설상차는, 올라타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힘차고 묵직하게 돌진하며 설원을 파고든다. 엔진 진동과 소리를 온몸으로 받는다. 눈이 충분할 때만 탈 수 있는 설상차를 탔으니 불확실함을 선택한 것을 보상받은 기분이다. 소복이 쌓인 눈 평지 위를 줄을 지어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3000m 고도에 이르러 마주한 광경은 묘하다. 검은 화산토와 얇게 쌓인 눈이 교차하는 땅 위로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분연과 구름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눈이 쌓여 있는데도 곳곳에 드러난 화산토 바닥에 손을 가져다 놓으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은 좀처럼 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찰나의 순간, 구름이 걷히고 발아래로 카타니아 시가지와 그 너머 지중해가 납빛으로 펼쳐진다.
살아있는 화산으로 빚어진 떼루아와 문화
유네스코는 에트나를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성층화산 중 하나이자, 인류가 2700년 이상 기록해 온 화산으로 설 명한다. 정상에는 분화구부터 분석구, 용암류 같은 지형이 다양하다. 화산의 열이 발밑 특정 구역에만 머물러 있다. 체감 기온이 쌀쌀한 정도로 매서운 겨울 같지 않음에도 눈이 녹지 않는 게 신기하다. 소복이 쌓여 천천히 녹아드는 눈은 화산토 안으로 스며들어 용암석을 통과하고, 미네랄이 가득한 지하수가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지질작용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에트나의 본 모습이자 풍요로움의 실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저지대로 내려오니 어느새 꽃들이 만발한다. 비슷한 종류의 노란 국화인 줄 알았는데, 키가 큰 관목과 우산처럼 퍼진 형태도 보여 검색을 해보니 봄철 지중해에 만개하는 노란색 들꽃 종류가 꽤 많다. 데이지 류부터 감초 향이 나는 야생 회향까지. 허브 향이 진동하는 이유다.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데, 그 안의 다양성 이 아름다운 경관을 완성한다. 극단적인 환경이 에트나만의 토양과 식생, 풍경을 만들고, 그렇게 문화와 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