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김유석, 배송정책 결정
회사 내부서도 경영 참여 인지"
쿠팡은 "사익편취 우려 없어"
전문가 "동일인 지정 안해도
지배구조 파악…실효성 다해"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끝내 쿠팡의 총수(동일인)로 지정됐다. 미국 국적의 김 의장은 한국 특유의 대기업 규제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쿠팡을 뉴욕증시에 상장시키고 국회 출석을 거부하는 등 부단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촘촘한 규제 사슬을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계에서는 쿠팡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40년 전에 만든 낡은 제도로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장 동생 경영 참여가 ‘트리거’
공정위가 29일 5년 만에 쿠팡 동일인을 ㈜쿠팡 법인에서 김 의장 개인으로 변경한 핵심 고리는 김 의장 동생인 김유석 쿠팡Inc 부사장의 경영 개입 여부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자연인(개인)의 동일인 지정 예외 요건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간 쿠팡은 ‘김 의장 친족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았고, 공정거래법상 책임 있는 임원도 아니다’라며 이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도 지난해까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판단은 달랐다. 공정위는 대대적인 현장 검증 결과 김 부사장이 쿠팡 국내 사업의 핵심인 물류·배송 정책과 관련해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증거를 다수 파악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물류·배송 관련 정기·수시 회의를 수백 회 주재했고, 핵심 계열사인 쿠팡로지스틱스 대표를 불러 실적을 점검한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 김 부사장의 회사 내 직급이 계열사 대표이사와 비슷한 ‘최상위 등급’에 해당했고, 개인 비서를 두는 등 복지 및 보수 수준도 ‘등기 임원’에 준한다고 봤다.
경제계는 쿠팡의 지난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공정위가 입장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김 의장이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서 소위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장관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지난해 쿠팡 개인정보 청문회 때 문제 제기가 있었고, 김 부사장 경영 참여에 대한 신고가 접수돼 면밀히 조사한 결과”라며 “쿠팡 내부 인원도 김 부사장의 경영 참여를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동일인 제도 존재 이유 희미해져
쿠팡은 “향후 행정소송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쿠팡은 “김 의장의 동생은 공정거래법상 임원(대표이사·이사·감사·지배인 등)이 아니며 한국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특히 “쿠팡Inc는 한국 쿠팡 법인을 100% 소유하고, 한국 쿠팡도 자회사 및 손자회사를 100% 소유한 투명한 지배구조”라며 “김 의장과 친족은 한국 계열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사익 편취 우려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김 부사장이 실제로 쿠팡 경영에 참여했다면 자연인 동일인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그런 이유로 김 의장을 재벌 총수를 뜻하는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게 맞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취지와 달리 제도 자체가 목적이 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학계에서는 쿠팡 사례가 아니더라도 올해로 40년 된 동일인 제도는 존재 이유가 희미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일인 제도는 1986년 기업집단 규제와 함께 도입됐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인 제도는 과거 대기업들이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의 개념으로 도입됐다”며 “한 명의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지배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현시점에선 제도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동일인 한 명이 기업집단을 지배하며 여러 관계사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점도 동일인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두나무 등 신흥 정보기술(IT) 대기업은 가족끼리 회사를 경영하는 구조도 아니다. 경제계 관계자는 “국경을 넘나드는 인수합병(M&A)으로 최대주주의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제2, 제3의 쿠팡 동일인 논란이 재연되면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