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미학에 목숨 건 '나비부인'...새해 벽두 뉴욕의 겨울밤을 뜨거운 박수로 녹이다
[리뷰] 압도적 미장센 내세운 오페라 '나비부인'
뉴욕 무대 빛낸 한국인 성악가 김효나와 백석종
허상의 세계를 채운 진실한 감정
뉴욕 무대 빛낸 한국인 성악가 김효나와 백석종
허상의 세계를 채운 진실한 감정
메트 첫 주역…혜성처럼 등장한 김효나
지난 13일 저녁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평일 저녁이었지만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극장에 어둠이 내려앉고 서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지휘봉이 올라가기 전 커튼이 먼저 움직였다. 관객들은 작품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음악보다 먼저 눈으로 알아차렸다. 이렇듯 밍겔라 프로덕션의 <나비부인>은 시각적 자극에서 출발한다. 서곡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위에는 작품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논리적인 설명 대신 강렬한 직관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 프로덕션에서 미장센은 음악을 보조하는 배경이 아니라, 음악과 나란히 극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와도 같았다.
지난 시즌 커버 가수에서 단숨에 주역으로 올라서며 메트에 데뷔하게 된 한국인 메조소프라노 김효나는 이번 프로덕션의 인상적인 발견이었다. 이화여대를 거쳐 매네스 음대에서 수학한 그는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 극장에서 5년간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바그너를 비롯한 정통 레퍼토리부터 현대 작품까지 폭넓게 경험해 왔다. <나비부인>의 스즈키는 LA 오페라, 덴마크 왕립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에서 이미 그를 증명해 온 대표적인 배역이기도 하다.
비극의 불씨를 당긴 인물 핑커톤을 노래한 백석종의 목소리에서는 지난 시즌 <투란도트>의 칼라프와는 또 다른 질감이 느껴졌다. 볼륨이 더 커졌다기보다는 소리의 밀도 자체가 달라진 인상이 들었다. 이날 백석종의 실연을 처음 접한 한 성악가는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이라고 평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그의 발성은 객석 구석구석을 명료하게 타격했다. 백석종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이 캐릭터를 더 불편하고, 동시에 더 설득력 있게 이끌며 핑커톤을 비열한 악열으로만 소비되지 않게 했다.
日전통 인형극 ‘분라쿠’가 암시하는 것들
이 프로덕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는 일본 전통의 인형극 ‘분라쿠(Bunraku)’였다. 세 명의 인형술사가 하나의 인형을 조종해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밍겔라는 초초상의 아들을 아역 배우 대신 이 목각 인형으로 대체했다. 관객들은 인형술사의 존재를 뻔히 보면서도 어느새 인형에 감정이 이입되었고, 온기 없는 인형이 인간 배우 곁에서 빚어내는 기묘한 이질감은 극의 현실성을 흔들었다.
마르코 아밀리아토가 이끈 메트 오케스트라는 장면 전환과 선율의 유기적 연결을 매끄럽게 주도했다. 다만 가수들이 피아니시모로 감정의 심연을 어루만져야 하는 몇몇 순간에서는 밸런스의 아쉬움이 있었다. 가수의 가장 여린 호흡이 이어지던 순간,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질감이 그 섬세함을 투박하게 덮어버린 점은 옥에 티였다.
뉴욕=김동민 지휘자·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