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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게이즈와 파시즘이 출발한 대중의 시선...말레나의 지옥을 만든 것들
[arte] 이수정의 영화 속 악녀들
파시즘에 빠진 대중과 마녀사냥의 메커니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영화 <말레나>
파시즘에 빠진 대중과 마녀사냥의 메커니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영화 <말레나>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을 대리 실현하는 존재는 레나토다. 영화는 레나토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며, 그의 성적 판타지를 빌어 말레나를 향한 대중의 ‘메일 게이즈(male gaze)’를 구현한다. 레나토의 시선은 언제 어디서나 말레나를 좇는다. 그는 말레나의 집에 침입하고, 벽에 난 구멍으로 그녀를 염탐함으로써 관객을 관음증에 동참시킨다.
사람들이 말레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오히려 권력의 원천이 아니던가. 문제는 말레나가 대중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가 분석했듯 파시즘에 빠진 대중은 ‘스스로 사고할 능력’과 ‘적확한 어휘로 표현할 능력’을 잃는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합리적 사유와 행동이다. 말레나는 생각할 줄 알고 말할 줄 안다. 법정에서 그녀가 자신을 변호한 말은 이치에 맞고 반박할 여지가 없다.
레나토는 자신이 말레나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믿는다. 그는 말레나를 감시함으로써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을 사람들의 편견이 터무니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레나토 역시 말레나를 대상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말레나를 구원하는가 하면, 변호사에게 겁탈당한 말레나를 마음대로 ‘용서’한다. 레나토의 순정 역시 마을 남자들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레나를 보호할 ‘남성의 권위’는 부재한다. 말레나의 남편은 전쟁터로 끌려갔고, 아버지는 폭격으로 사망했다. 말레나의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다. 듣지 못함은 소통의 부재를 상징한다. 그는 딸의 해명을 듣지 않음으로써 대중의 편에 선다. 영화는 힘없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를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과 겹쳐 놓는다. 남편의 사망 소식 후 말레나는 카데이 중위와 교제했으나, 그는 스캔들에 연루되기 싫어 사랑을 부정했다. 궁여지책으로 자신을 강간한 변호사와 결혼하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이다. 마을 사람 중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가족과 마을, 파시즘이라는 권위에 의존해 살아간다.
배급도 연금도 끊긴 말레나는 생존이 곤란해진다. 남성들이 도움의 대가로 원한 것은 늘 말레나의 몸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자를 때, 그녀의 마음에 남아있던 순수성과 결벽도 함께 잘려 나간다. 짧은 머리를 붉게 물들인 말레나는 몸매를 드러낸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선다. 다리를 꼬고 앉은 말레나가 담배를 꺼내 물자, 남자들이 앞다투어 불을 붙여준다. 이 유명한 장면에서 모니카 벨루치는 눈빛만으로 말레나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전쟁이 끝난 뒤, 마을 여성들이 앞다투어 말레나의 옷을 찢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이 폭력은 정의의 이름을 쓴 린치이며 도덕의 탈을 쓴 질투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지만, 여성 역시 파시즘에 동조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한다. 말레나에 대한 응징은 이중의 층위를 지닌다. 여성의 정절을 심판하는 같은 여성의 심판이자,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말레나의 아름다움이 지닌 영향력과 그녀가 누린 것으로 오해받는 향락—에 대한 질투다.
말레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을을 떠난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자, 레나토는 그에게 그간의 진실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편지에 서명함으로써 레나토는 익명의 대중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한 통의 편지가 과연 무엇을 복원할 수 있을까? 말레나가 겪은 수년간의 고통을, 마을 전체의 공모를 소급하여 지울 수는 없다. 레나토의 성장은 개인의 각성이 지닌 가능성인 동시에, 그 각성이 얼마나 늦고 미약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양가성이 지닌 의미를 그대로 남겨둔다.
마을에 돌아온 말레나에게 레나토는 진심을 담아 행운을 빈다. 이제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레나토는 말레나를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아닌 전인(全人)으로 본다. 비로소 레나토는 한 명의 남성으로 성장한다. 그의 성장은 파시즘에서 벗어난, 개인으로서의 변모를 상징한다. 친구 무리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안다. 성장이란 반바지를 벗고 긴 바지를 입거나, 여성과 동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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