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에서 『우리 동네』를 지나
『내 몸은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로 이어진 연작 여정


이문구(李文求, 1941~2003)는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冠村)[현재의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2동의 옛 이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군 서기와 등기소 서기를 지내고 향리에서 사법서사로 일했기에 어린 시절은 비교적 풍요롭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문구의 나이 아홉 살 때 6·25전쟁을 겪으며 집안은 몰락하고 말았다. 당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보령군 총책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둘째 형과 셋째 형도 아버지와 같은 혐의를 받고 대천 앞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6·25전쟁이 끝난 3년 뒤인 1956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면서 이문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만 했다.

이문구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건어물 행상, 도로 공사장 잡역부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그래도 작가의 꿈을 잃지 않았던 이문구는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당시 서라벌예술대학에는 김동리(金東里, 1913~1995), 서정주(徐廷柱, 1915~2000),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조연현(趙演鉉, 1920~1981),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등 국내 대표 작가들이 강의 중이었고, 이문구와 함께 동문수학한 이들로는 박상륭(朴常隆, 1940~2017), 한승원(韓勝源, 1939~ ), 조세희(趙世熙, 1942~2022), 이건청(李健淸,1942~ ) 등이 있다.

이문구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65년 9월 스승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묘’라는 여승의 환속을 그린 단편 「다갈라 불망비(不忘碑)」를 발표했다. 1966년 《현대문학》 7월호에 단편 「백결(百結)」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표지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표지 / 사진. © 김기태
이문구는 『관촌수필』에 이어 비슷한 연작을 1977년부터 발표했는데, 그것이 「우리 동네」 연작이다. 『관촌수필』에서 농촌은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면서 외부 자본이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 동네」 연작에서는 당시 농촌의 현실을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기에 농촌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농민이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이문구로서는 농촌에 대해 ‘황폐하고 몰인정하며, 근대화의 희생양, 도시 자본주의의 수탈 대상’으로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연작소설 『우리 동네』는 한국의 토속 언어와 서정, 그중에서도 충청도 토박이말(사투리)을 구수하게 구사하는 작가 이문구의 대표 작품집이다. 이 책은 우리의 농촌 현실을 비판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린 '우리 동네' 연작 9편을 담았다. 모두 아홉 편이 같은 충청도 시골(천동면 관향리 놀미부락)이라는 공간과 1970년대라는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시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이문구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며 특히나 고유어나 사투리에 능통한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문구의 문학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강력한 자원은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문체다. 유려한 토박이말과 생생한 입말이 살아 숨 쉬고, 곳곳에서 날카로운 풍자(諷刺)와 풍유(諷諭)가 번뜩이는 그의 문장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이 유장(悠長)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말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입담은 이 소설집에서도 예외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연작소설 『우리 동네』 초판본의 이모저모

연작소설 『우리 동네』 초판본은 일반적인 소설 단행본과 마찬가지로 A5 판형(가로 152mm, 세로 210mm) 크기이며, 분량은 간기면(刊記面)까지 350쪽이다. 먼저 표지를 보면 작가의 초상 이미지를 두고 오른쪽에 제목 ‘우리 동네’가 자리 잡았고, 그 아래 왼쪽에 작가 이름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 평론가 김우창의 해설 중 한 대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왼편으로 ‘오늘의 작가총서(作家叢書)’, ‘민음사(民音社)’ 표기가 있는데, 표지의 모든 활자는 한자로 세로쓰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앞표지 안쪽으로 접혀 있는 날개에는 표지에 쓰인 해설의 한 대목과 유사한 홍보 문구, “녹색지대(綠色地帶)도 발전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지난날과 오늘의 제모습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쓰여진 것이 「우리 동네」 연작소설(連作小說)이다./ 「우리 동네」가 사람 사는 곳을 뜻하듯/ 김씨, 이씨 무슨 씨들 또한 우리 둘레에서 늘 보는 얼굴 그을린 이웃사람들이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칠 날이 없는 한/ 이 소설도 으례 미완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는 내용이 세로 활자로 인쇄되어 있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민음사, 1981년 12월 20일 발행) 앞표지 날개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민음사, 1981년 12월 20일 발행) 앞표지 날개 / 사진. © 김기태
그다음에 면지(面紙)가 나오고, 그 뒤를 이어 별쇄(別刷)한 속표지가 나온 다음, 본문 용지가 시작된다. 본문 속표지에 이어 차례가 나오고, 이윽고 11쪽부터 첫 연작 「우리 동네 김씨(金氏)」가 시작된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왼쪽부터) 속표지와 차례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왼쪽부터) 속표지와 차례 / 사진. © 김기태
본문의 마지막 작품 「우리 동네 황씨(黃氏)」가 끝나고 나면 평론가 김우창이 쓴 「근대화 속의 농촌—이문구의 농촌소설」이라는 제목의 해설이 29쪽에 걸쳐 이어진다. 해설이 끝난 다음 쪽에 작가연보(作家年譜)가 실려 있고, 그 뒤편 홀수쪽에 간기면이 있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왼쪽부터) 작가연보와 간기면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왼쪽부터) 작가연보와 간기면 / 사진. © 김기태
뒤표지 안쪽으로 접힌 날개를 보면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작가총서’ 목록이 작가의 초상과 함께 인쇄되어 있는데, 이문구의 작품 이외에 이호철의 『문』, 최일남의 『너무 큰 나무』, 최인훈의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이청준의 『매잡이』, 김승옥의 『염소는 힘이 세다』, 황석영의 『돼지꿈』,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윤흥길의 『장마』,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김원우의 『무기질 청년』,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같은 당대의 명작들이 보인다. 그리고 뒤표지를 보면 앞표지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으며, ‘오늘의 작가총서를 내면서’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뒤표지 날개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뒤표지 날개 / 사진. © 김기태
한편, 이 연작소설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제목은 하나같이 ‘우리 동네 모씨’하는 식으로 김씨, 이씨, 최씨, 정씨, 류씨, 강씨, 장씨, 조씨, 황씨 등을 호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네 사람 모두를 불러내서 각각의 인간적 특성과 얽히고설킨 서로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지문을 제외한 대사는 모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점령하고 있다.

연작소설 『우리 동네』의 주요 내용과 의미

먼저 맨 처음 나오는 「우리 동네 김씨」는 주로 당대의 민방위 교육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김씨는 가뭄이 들자 남의 저수지 물을 양수기로 퍼 올리다가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에게 동시에 들켜 곤경에 빠진다. 그런데 사태는 의외로 반전되어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의 싸움으로 번졌다가 이것마저도 민방위 교육이 열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된다. 김씨는 민방위교육장에서도 생각 없이 부면장의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아 교육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뒤를 잇는 작품 「우리 동네 이씨」는 농촌에까지 번진 망년회(忘年會)의 실태와 농촌부녀자들의 관광여행,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농협의 실상, 농촌 가정의 도박 풍조 등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 동네 최씨」는 소작농인 최씨를 통해 토지 소유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는 한편, 도시인들의 사냥 공해와 농민 자녀들이 관련된 노사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씨의 맏딸과 친구 영순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장노동자의 문제가 농민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임을 은연중 강조한다.

다음으로, 「우리 동네 정씨」에서는 1970년대 이후 나타난 농촌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근대화’의 주체인 농민을 소외시킨 농촌 근대화 정책의 허구성과 추곡수매의 비리 등을 폭로하는 가운데 옛날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농촌의 실정을 깨닫고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아가며 자신들의 권리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농민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작품인 「우리 동네 황씨」는 심각한 농약 공해로 파괴되어 가는 농촌의 생태계와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덕 고리채, 농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부재지주의 증가, 농협을 악용하는 모리배 등 온갖 수탈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농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본문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본문 / 사진. © 김기태
이제 이 책에 나오는 감칠맛 나는 작가의 문체를 맛볼 차례다. 기막힌 풍자까지 섞여 있는 입담 속에서 독자들은 배꼽을 잘 간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먼저 「우리 동네 김씨」 중에서 몇 대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저니는…… 말을 해두 꼭 두엄데미에서 고리삭은 말만 입에 바르더라…… 저니 말 뫼놨다가 거름 허면 비료 안 사두 베 됨새가 보기 좋을 겨.”(12쪽)

“반굉일이라 핵교 운동장이 비니께 그러는 개벼. 창원이더러 가끔 내다봐달라구 허지. 요새는 일 갈 디두 읎구, 방위 제대헌 뒤루는 헐 일 읎어서 누웠다 앉었다 허메 해 질어 해쌓던디. 공고 나왔으닝께 양수기는 볼중 알테거든.”(18쪽)

“뱃속에 안주가 오죽 쟁여 있어? 곱창이 읎나, 염통이 읎나, 앞으루 이삼십 년은 끄떡읎이 안주 일절을 뱃속에서 끝내줄 텐디. 술이나 대이구 붜 주면 바깥이서는 얼근헐 일만 남는 겨.”(19쪽)


「우리 동네 이씨」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입담들이 오간다.

“그 오백 원 같은 소리 작작 해둬라. 돈은 왜 나버러 달라네? 등창에 댓진 바른 사람 니 옆댕이 누워 있는디…… 니미는 늬애비 만난 뒤루 돈 안부 끊겨서, 오백 원짜리에 시염이 났는지, 천 원짜리가 망건을 썼는지, 질바닥에 흘린 것두 못 알어봐서 못 줏는단다.”(36쪽)

‘으악새 우는 사연’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연작 「우리 동네 황씨」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는 이 작품의 높은 문학성을 증명하듯이 동네 풍광을 묘사하는 빼어난 문장과 함께 이 연작의 결론이랄 수 있는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둠벙은 무시로 자고 이는 마파람 결에도 물너울을 번쩍거리고, 그때마다 갈대와 함께 둠벙을 에워싸고 있던 으악새 울음이 꺼끔해지면 틈틈이 여치가 울고 곁들여 베짱이도 울었다. 김은 그것을 밤이 우는 소리로 여겼다. 하늘은 본디 조용한데 으레 땅에서 시끄러웠었다는 것도 더불어 깨우치면서.(315쪽)

“내가 헐라는 말은 저기여. 벨 것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구 땅만 믿구 사는 우리찌리는 여전히 경우가 있구, 이웃두 있구, 우정두 있구, 이런 것 저런 것 다 분별이 있는디, 직업이 사람을 상대루 허는 직업은 우리가 마소나 들풀이나 돌멩이 같은 다른 저기들과 다름읎이 뵈는 모양여. 우리가 있음으루 해서 각기 직업두 생긴 겐디, 그 직업을 한 번 붙잡었다 허면 우선 인심부터 내버리구 저기허더란 말여. 직업을 권세루 알기루 말헐 것 같으면 하늘을 입구 흙을 먹는 우리네 위에 올려 슬 것이 읎을 텐디두…… 그러나 우리를 없인여긴 것치구 오래 안가데. 나는 배움이 읎어서 지난 역사를 저기헐 수는 읎지만 아마 사람 위에 올러 스려구 버둥댄 것 치구 저기헌 적이 읎을 겨. 그랬으니께 오늘날에 우리가 있는 게구, 우리는 또 자식들이 사는 걸 저기허면서 저기허는 게구……”(317쪽)


이렇게 해서 드디어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문득 이 책의 뒤표지에 실려 있는 ‘오늘의 작가총서를 내면서’라는 글에 시선이 머문다. 문학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선택적 독서의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표현이 무척 마음 깊이 다가왔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진 듯한 요즈음에도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읽을 만한 책’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터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무탈하면서도 살기 좋은 ‘우리 동네’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뒤표지 / 사진. © 김기태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뒤표지 / 사진. © 김기태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