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해론의 원작을 8부작 드라마로 만든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엉뚱한 데에 관심이 기울여지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는 한 명의 ‘찌질남’이 나온다. 함자 말리크이다. 군 정보국 소속 팀장이다. 일 처리가 어리숙하다. 이 함자 말리크 역은 아딜 아크타르가 맡았다. 아딜 아크타르는 요즘 영국 영화와 드라마에 양념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씬스틸러이다. 영국 배경인데 아딜 아크타르가 나오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이다. 인기 드라마였던 <킬링 이브 시즌2>(2019)에서 마틴이라는 정신과 의사로 나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할런 코벤 원작의 넷플릭스 8부작 드라마 <비밀의 비밀, Fool Me Once>에도 나왔다. 거기서는 희귀병에 시달리는, 아주 똑똑한 경찰로 나온다.

아딜 아크타르는 파키스탄계이다. 이민자 집안 출신이지만 런던에서 나고 자란 영국인이다. 이제 영국은 인도계와 파키스탄계, 아프리카계가 뒤섞인 완벽한 다인종 사회가 됐다. 그런 사회적 특징이 드라마마다 적극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 작품 <다운 세미터리 로드> 또한 그렇다. 이게 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식민 국가 운영의 결과이며 영국은 지금 그 앙갚음을 톡톡히 당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다. 20세기의 영국은 아프리카와 인도 아대륙(subcontinent)을 지배했는지 모르지만 21세기의 영국은 그들로부터 역으로 문화적 침략을 입고 있는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만으로 볼 때 이제 영국은 더 이상 앵글로색슨족의 나라가 아니다. 그건 이상한 카타르시스이다.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군 정보국 소속 팀장 함자 말리크 역을 맡은 배우 아딜 아크타르.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군 정보국 소속 팀장 함자 말리크 역을 맡은 배우 아딜 아크타르. / 사진. ©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의 주요 배역은 아프리카계 영국인들이다. 이들은 영국 사회에서 하층민 비율이 높고 전쟁이 나면 파병의 제1차 자원자들이 된다. 물론 돈 때문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데서 벌어진, 대체로 ‘더러운 전쟁’에 동원됐다. 8부작 드라마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그렇게 비교적 근래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층 계급의 아프리카계 영국인으로 파병 군인들이 겪은 음모의 사건을 두 여성 탐정(한 명은 고미술 복원가로 탐정으로는 아마추어다)이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 이런 류의 할리우드 작품들처럼 엄청난 음모론, 강력한 액션, 호기로운 영웅주의, 눈요기용 베드씬 등은 기대하면 안 된다. 그런 장면들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국 드라마답게 종종 냉소적이고, 가끔 지적이며, 그래서 대체로 지루한 면을 보이다가, 이상하게도 한 회 한 회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서 보게 만드는 매력을 선보인다. 이걸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한국이나 미국에서 리메이크 영화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좀 더 격렬하고 자극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 좋을지는 보는 이의 취향과 정치관에 달렸다.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사립 탐정 조이 역을 맡은 엠마 톰슨.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사립 탐정 조이 역을 맡은 엠마 톰슨.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미술품 복원가 사라 트래퍼드 역을 맡은 루스 윌슨.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에서 미술품 복원가 사라 트래퍼드 역을 맡은 루스 윌슨. / 사진. © 애플TV
미술품 복원가인 사라 트래퍼드(루스 윌슨)는 옥스퍼드시 남부에 사는 평범한 유부녀이다. 런던 근교인 옥스퍼드시 남쪽은 노동자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서민 동네이다. 사라는 어느 날 자기 동네에서 일어난 가스누출 폭발 사고에 휘말린다. 사고로 한 커플이 죽었고 죽은 여자의 딸 다이나(아이비 콰이)가 실종됐는데 사라는 마침 다이나에게 동네 한 꼬마로부터의 위로 편지를 전달하려던 참이었다가 아이가 어디론가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라가 사립 탐정인 조 실버만(아담 고들리)과 접촉하게 되는 것은 우연인 듯 필연이다. 조 실버만은 능력은 그렇게 출중하지는 않지만, 전설의 추리소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추앙하고 그가 창조한 사립 탐정 캐릭터 필립 말로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조 실버만의 아내이자 남편보다 더 민완인 사립 탐정 조이(엠마 톰슨)는 그런 그가 다소 한심스럽게 보이지만 남편이 착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이다. 조이는 조 실버만과의 지루한 부부 생활에 싫증이 나서 경찰 관계자와 혼외정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 모든 우연과 조각조각 벌어지는 일에 있어서 조 실머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혀 모르는 관계였던 사라와 조이를 끔찍한 사건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왜 조 실버만이 죽게 됐는지, 왜 옥스퍼드 서민가에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지, 이게 사고를 가장한 테러인지 아닌지의 속 시원한 답은 5회쯤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과 관타나모 수용소 고문 행위만큼 영국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 실로 ‘더러운 짓’을 많이 저질렀다. 아마도 이 드라마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2022년 BBC가 폭로한 SAS(영국 공수특전대)의 한 작전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2016년 전후의 일로 민간인 다수가 탈레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즉결 처분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영국군은 그런 식의 추악한 전쟁을 벌였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공작 또한 거듭 자행됐다.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바로 그 ‘은폐’ 공작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 간다. 영국국방부가 이런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에 대해 (어차피 군사 법정에 세우는 리스크를 감당하느니) 화학전 실험 대상으로 써서 자연스럽게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명 ‘기니피그’ 작전, 곧 실험용 모르모트로 이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병참 기지가 그런 용도로 사용됐는데 거기서 탈출한 병사 다우니(네이든 스튜어트 자렛)와 그의 친구가 옥스퍼드의 집으로 숨어들었고 그들을 죽이려는 국방부 정보팀이 가스 폭발 사고를 위장한 폭탄 테러를 벌이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된다.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에피소드 6에서 7로 넘어가는 이야기가 가장 스펙터클 하다. 스코틀랜드 병참 기지에서 추격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와 달리 시리즈 드라마에서는 오프닝 시퀀스나 첫 회 분량에서 등장인물 모두를 다 보여주기가 어렵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매개 변수의 인물들을 중간중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드라마는 주요 인물들을 맨 마지막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이야기를 피날레로 몰고 가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선호한다. <다운 세미터리 로드>도 스코틀랜드의 한 고립된 섬 안으로 이야기의 네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을 몰아넣는다. 사립 탐정 조이와 사건에 휘말린 사라, 이들이 찾으려는 아이 다이나가 한 축이다. 여기에 아이를 구하려는 병사 다우니(다이나는 그의 딸로 보인다)가 그들을 쫓아 왔으며, 다우니를 제거하려는 무자비한 킬러가 그를 또 뒤쫓아 섬 안을 활개 치고 다닌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없애라는 지령을 받은 정보국 팀장 함자 말리크가 있다. 이들의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지기 전, 섬으로 여인 둘을 데려다주는 스코틀랜드 선장은 이렇게 소리친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1701년부터 지금까지 한 짓을 보라구! (지금도 여전하잖아!)”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제목인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묘지로 내려가는 길’이란 뜻이다. 묘지로 내려가는 길은 생과 사,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가른다. 진실은 묘지처럼 어둡고 음습할 수 있다. 한번 묘지의 내부를 본 자들은 묘지 밖의 세상이 달라 보인다. 드라마 <다운 세미터리 로드>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국가적 폭력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걸 지루하지 않게, 너무 엄숙한 표정으로 얘기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젊은 층 시청자들이 더 많이 보게 하려고 챈들러가 구현한 탐정의 여성 버전 캐릭터 조이와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캐릭터인 미스 마플 같은 여자 주인공 사라를 내세우고 있는 드라마이다. 둘은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의 히트곡 '왓츠업(What’s Up)'과 더 클래쉬(The Clash)의 '노우 유어 롸이츠(Know Your Rights)'만큼 다른 성격의 여자들이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BBC 같은 공영방송이 폭로하는 다큐와 그걸 모티프로 만들어진 이런 드라마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성찰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 점만으로도 8부작을 이어 볼 이유가 충분하다. 엠마 톰슨이 여전히 믿고 보는 배우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이번에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 모양이다. 한결 날렵해졌다. 왜 아니겠는가. 사립 탐정 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애플TV <다운 세미터리 로드> 스틸 컷. / 사진. © 애플TV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