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요즘 흔하디 흔한 71년생이다. 지금은 7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어 한창 활동하는 때이다. 70~75년생들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여전히 한창때이며 젊고 매력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12월 17일 개봉할 <파리, 밤의 여행자들(Les Passagers de la nuit)>이다. 이 영화에는 세기의 절세 미녀로 손꼽혔던 엠마누엘 베아르가 같이 나온다. 베아르는 1963년생이다. 확실히 전성기의 꼭짓점을 지나 하강 중임을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인생의 헤이데이(heyday)는 짧다. 나이대로 50~55 사이이고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바로 그 위치에 있다.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1984년과 1988년이 배경인 영화이다. 1988년 새해 어드메 새벽 시간에 갱스부르와 베아르는 클럽에서 같이 춤을 춘다. 인생의 고갯길 위에 현재 누가 서 있으며 누가 내려가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엠마누엘 베아르 미안해)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아빠는 전설의 히피, 엄마는 에르메스 뮤즈…자유의 아이콘이 된 딸
프랑스 여배우들 상당수가 그렇지만 샤를로트 갱스부르만큼 카메라 앞에서 옷을 스스럼없이 벗는 연기자도 드물다. 베드신도 갱스부르는 실제처럼 연기를 한다. <파리, 밤의 여행자들>에서도, 엘리자베트를 연기하는 갱스부르는 도서관에서 파트타임 사서로 일하다 만난 위고라는 남자(티볼트 빈콘)와 섹스를 하는데 침대에서 아무 거리낌이 없다. 생각해 보라. 이런 장면을 찍을 때는 벗은 두 남녀의 침대 바로 옆에 카메라가 있고 위에는 조명이, 그리고 바로 머리 위에는 붐 마이크가 있을 것이다.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자신의 헤어누드조차 감추지 않고 남자의 벗은 몸 위로 올라와 몸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연기를 한다. 그 자연스러움이 최고인 여배우이다.

그녀가 이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부모 때문일 수 있다. 세상에. 아버지가 그 난다긴다하는 최고 한량, 제멋대로 살았던, 전설적인 히피 아티스트 세르주 갱스부르이다. 가수이고 배우였으며, 그림도 그렸고 토크쇼도 했다. 프랑스의 국민 예술가였고 그가 죽었을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이 추도 성명을 냈을 정도였다. 예술가로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아버지로서는 ‘꽝’일 때가 많다. 모든 유명인은 배우자와 자식, 가족의 희생으로 스타가 된다. 그러나 세르주는 딸 샤를로트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소 지나치게 사랑해서 근친 관계일 수도 있다는 오해까지 받았다.
아버지 세르주 갱스부르와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녹음한 노래 'Lemon Incest'. 작품 활동 모습 / 사진출처. IMDb
아버지 세르주 갱스부르와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녹음한 노래 'Lemon Incest'. 작품 활동 모습 / 사진출처. IMDb
게다가 샤를로트의 엄마는 그 유명한 ‘버킨백’의 제인 버킨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했던 여자를 부모로 둔 사람,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 탓에 카메라 세례를 받았던 여자의 정신 상태가 일반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누드가 되는 걸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남의 시선 따위 굴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생래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 사진출처. Getty Images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 사진출처. Getty Images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출연작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님포매니악>(2013)이다. 볼륨 1과 2로 나누어 상영된 이 영화에서 갱스부르는 피학성을 지닌 여자로 나온다. 그녀는 가학을 즐기는, 아니 그걸 직업으로 하는, 남자의 사무실에 찾아가 손발을 묶이고 엉덩이를 깐 채 실컷 두들겨 맞는다. 엉덩이에 회초리 자국이 나는데 그건 분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갱스부르는 또 같은 영화에서 흑인 남자 두 명과 섹스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사이즈가 말 만한 흑인 두 명이 그녀를 사이에 두고 누가 위로 가고, 누가 아래로 갈 것인지를 놓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님포매니악>은 인간에게 잠재돼있는 폭력의 본성이 어떤 억압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이 어떤 성적 충동과 취향으로 발현되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유의 영화는 종종 언시뮬레이티드섹스(unsimulated sex)신을 보여준다. 실제 인터코스가 나오고 모든 것을 실제로 하거나 실제처럼 연기한다. 이런 연기에 있어, 그리고 이런 행위에 있어 샤를로트 갱스부르 이상의 여자 연기자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수위까지 갱스부르는 밀어붙인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왜 한동안 단짝처럼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여러 편의 영화를 같이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라스 폰 트리에가 파시스트 논란을 빚으면서부터는 (2018년 작 <살인마 잭의 집>은 그런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와 작품을 같이 하는 걸 피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트리에의 또 다른 작품인 <안티크라이스트>(2009)에서 갱스부르는 자기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가위로 잘라 내는 극악한 장면을 연기한다. 그녀는 그 연기로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짓’이든 어떤 행동이든 어떤 퍼포먼스든 다 해낼 수 있음을 스스로에 확인시켰다. 이후에 나왔던 <님포매니악>의 모든 표현 수위는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이미 정해졌던 셈이다.
아빠는 전설의 히피, 엄마는 에르메스 뮤즈…자유의 아이콘이 된 딸
영화 <님포매니악>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님포매니악>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작품 선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이런 영화, 이런 작은 역에도 출연하는가’와 ‘아예 이렇게 작은 영화, 저예산 상업영화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하는가’이다. 전자가 <페일 블루 아이>(2022)나 <스노우맨>(2017) 같은 작품이다. <페일 블루 아이>에서는 1800년대 미 육사 주변에서 선술집을 하는 아낙네 펫시 역으로 나오며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주인공 오거스터스(크리스찬 베일)를 몸과 마음으로 위로해주는 역이다. 여기서도 갱스부르는 침대에서 누드 보여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스노우맨>은 그냥 아내 역이다. 성격은 진상이지만 사건 수사 하나만큼은 명석한 형사 해리(마이클 패스벤더)의 전처 라켈 역이다. 내내 존재감이 없다가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도 그렇지, 당시 신인 배우였던 레베카 퍼거슨에 비해서도 비중이 작다. ‘갱스부르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하는 심정이 된다.

<웰컴, 삼바>(2014) 같은 작은 영화에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출연한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이유일 수 있어 보인다. 프랑스 사회는 십여 년 전부터 이민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쟁점이 아주 뜨거워졌고 장 마리 르펜과 같은 극우 정치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이다. <웰컴, 삼바>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불법 이민자인 삼바(오마르 사이)와 연정과 육체를 나누는 헤드헌터 앨리스로 나온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갱스부르가 새까만 피부의 오마르와 포옹하고 입 맞추는 것만으로도 인종주의자들, 차별주의자들에게 묵직한 한 방을 먹이는 듯한 느낌을 줬다. 갱스부르는 그런 배우이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몸과 연기로 그리고 영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영화 <웰컴, 삼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웰컴, 삼바>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아마도 그녀가 하고 싶은 핵심적인 얘기는 자유일 것이다. 자유로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뼛속 깊이 자유롭게 살아야 하며 끊임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로 보인다. 냉정하게 말해서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미인은 아니다. 입도 약간 돌출형이고 치아도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정밀한 교정이나 라미네이트 같은 걸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 말라도 너무 말랐다. 가슴도 작다. 벗은 등으로는 척추의 뼈마디가 다 보일 정도이다. 이런 여자가 뭐 좋다고 하겠지만, 너도나도 갱스부르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열광이 아니다. 조용히 바라보며 그녀의 연기에 동조하고 그녀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동의하는 스타일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자연 미인이다. 자연산 미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연스러움의 미인이다. 삶은 내추럴하면 할수록 실체와 본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건져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나를 나대로,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을 맛보았는가. 보통은 그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그걸 해낸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자유로움의 대리 만족을 얻는다. 그녀가 서서히 프랑스 국민 여배우로 등극해 가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