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더블 빌
김성용 <크롤> & 윌리엄 포사이스 <하나의 편평한, 복제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기대 때문인지 1900년에는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발레가 안겨준 환상에 반기를 들며 현대무용이 등장한 것도 1900년의 일이다. 그런데 춤은 결국 하나여서 오래지 않아 발레와 현대무용은 손을 잡고 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갔고, 춤에 대한 질문과 혁신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김성용과 윌리엄 포사이스의 더블 빌로 선보인 이번 공연도 그 점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보이는 저 결과는 춤을 추고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실험이자 후대를 위해 춤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과정의 리서치였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는 김성용 안무작의 <크롤(Crawl)>은 그가 연구한 춤 메소드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과, 윌리엄 포사이스 안무작 <하나의 편평한,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은 인터랙티브 아트워크 ‘싱크로너스 오브젝트(Synchronous Objects)’와 연결되어 있다. 각각 현대무용과 발레를 기반으로 성장한 안무가이지만 춤의 실험과 리서치라는 틀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함께, 동시에, 춤의 동기화를 향해
이번 더블 빌 공연의 첫 무대를 장식한 윌리엄 포사이스의 <하나의 편평한, 복제된>은 200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도 춤의 연구와 교육에서 늘 이야기되고 재공연되는 작품으로 남았다. 14명의 무용수가 20개의 테이블을 밀고 들어와 테이블의 사이, 테이블의 위아래의 공간에서 춤의 다양한 형태가 이어지며, 테이블과 인간과 몸은 공간과 움직임의 형태와 형식으로 기하학적인 미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자체로도 재밌게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이 나온 배경에 ‘싱크로너스 오브젝트’가 있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
지난 2009년 온라인으로 오픈된 ‘싱크로너스 오브젝트’는 윌리엄 포사이스가 30명 이상의 연구원과 손잡고 안무 과정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춤의 안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터랙티브 소프트웨어이다. 20개 작품의 영상과 설명 문서, 작업 과정 노트도 여기에 공개했다.
즉, 안무의 동선이나 움직임과 호흡과 신호의 교환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보여줌으로써 이 온라인 프로젝트에 방문한 사람들은 안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숙지하고 자신의 안무 작업에 적용할 수도 있다. <하나의 편평한, 복제된>은 싱크로너스 오브젝트에서 이야기되는 대표 작품이다. 안타깝게 지난 2021년, 인터랙티브 인터페이스 제작에 사용된 소프트웨어가 중단되면서 상호작용 도구는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됐지만 안무 구조를 기술을 통해 시각화했다는 점, 그리고 윌리엄 포사이스가 자신의 안무에 관한 지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예술가의 태도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
‘하나의 편평한’ 것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몸과 함께 주요하게 등장하는 테이블을 뜻하고, ‘복제된’은 안무 구조와 도식이 동기화(synchronous)되는 것을 뜻한다. 안무 과정을,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춤을 추고 춤을 몸에 기록하는 사람들의 ‘동기화’이지만 동시에 그 이상을 넘어서 새로운 창의성을 자극하는 힘이 된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수직이 아닌 수평의 움직임을 활용한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음악 외에 무용수끼리 주고받는 소리와 신호, 눈빛의 교환은 작품을 이끄는 주요한 지점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무용수들이 함께했는데 마치 한 무용단에서 오래 호흡을 맞춘 사람인 것처럼 균형감 있는 합이 눈에 띄었다. 질서 있고 조직화된 대위법의 미를 춤의 선과 에너지로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무용수의 몸과 춤 안에 내재된 프로세스의 확인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이 직선의 움직임과 시각적으로 강렬한 에너지의 합이었다면 김성용 안무작 <크롤>은 곡선과 몸 안에 내재되어 있어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발산되는 힘의 흔적이었다. ‘Crawl(크롤)’이라는 단어가 ‘기어가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작품은 땅에 몸을 밀착시켜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호흡이 주요하게 작용했고, 전체적으로 뭉글하고 느린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점은 속도에 대한 다른 고찰을 끌어내기도 한다. 가장 특이하게 볼 수 있는 점은 같은 음악 안에서 어떤 무용수는 아주 느리게, 어떤 사람은 조금 빠르게, 다른 속도와 리듬으로 춤을 추고 움직이면서 그것이 하나의 유기체로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즉, 외부에서 주어진 음악이라는 요소는 같지만, 그것을 몸으로 흡수하고 해석해서 내놓을 때는 저마다의 속도와 리듬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 차이에서 오는 질적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군무, 2인무, 독무의 등퇴장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무용수가 무대 위에 함께 존재하며 마치 한 덩어리처럼, 동시에 각자가 자신의 존재를 외치며 어울린다.
크롤(Crawl)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김성용 안무가가 개발한 ‘프로세스 인잇’이라는 춤과 움직임과 방법론 때문이다. 프로세스 인잇은 이름 그대로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중점을 둔 개념으로써, 무용수 각자가 자신의 감각에 대한 반응을 드러내는 것으로 춤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과정이 완성이고, 안무가가 제안한 틀에 앞서 무용수의 개별성이 중시된다. 한 명 한 명의 무용수를 깊이 살펴보기도 하고 그 무용수들이 만난 전체의 합을 조망해서 보기도 하고, 그 둘 사이를 오가며 감각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장을 느끼는 게 이 작품을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김성용 안무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미술, 특히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이 갖는 ‘형식’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의 그림 속 색채가 아니라 형식에 관심을 두었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마크 로스코가 구상과 묘사에 기반한 재현보다 그림의 본질적인 면에 집중한 점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마크 로스코가 추구한 ‘다층 형상’이라는 양식이 여러 겹의 색을 겹치고 교차시키면서 근원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한 것처럼, 무용수 개별의 색과 감각이 겹치고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것들을 춤으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도 읽힌다.
크롤(Crawl)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춤은 본질을 탐험해 가는 춤을 위한 춤
춤의 대중성에 방점을 둔다면 이번 더블 빌 공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오갈 수 있다. 물론 이 두 공연에서 보인 무용수들의 에너지와 몸 그 자체로 대중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지점은 있다. 다만, 춤추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탐구와 탐색의 자세, 춤추는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무엇, 춤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공연, 더 나아가 춤 자체를 위한 공연이라는 점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건 사실이다. 춤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을 남기고 공유하며 춤이 단순한 유희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진중한 언어로 계속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두 예술가의 바람이 드러난 공연이기도 하다. 춤은 종종 춤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크롤(Crawl) 공연 현장 / 사진. ⓒ황승택, 제공. KNCDC
이단비 무용 칼럼니스트 • <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