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남녀는 커플일까?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너무 멀쩡하다. 조명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 아니 어둡다고 말하는 게 맞을 카페에서 다른 술도 아닌 압생트를 마신다. 남자를 보라, 지금 압생트 잔에 한참 물을 붓고 있다. 덕분에 술의 색이 탁한 연녹색으로 변했다.
여성의 술 또한 이미 색이 변해 있으니 이미 물을 더했는데 마셨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턱을 괸 자세나 표정, 어깨의 각도 등등 모든 면에서 태연함을 풍기고 있다. 반면 남성은 모자 밑 머리가 적당히 흐트러져 있으며 담배를 그야말로 꼬나물고 있다. 물을 더하는 술잔에 꽂힌 시선에는 기대와 더불어 피로가 깃들어 있다. 중력에 의해 물이 흘러 압생트에 섞이는 시간마저 길게 느껴진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장 베로,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The Drinkers)>, 1908, 개인 소장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둘이 커플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풍기지 않았을까? 둘 다 여자처럼 멀쩡하거나 아니면 남자처럼 지쳐있는 편이 그야말로 ‘그림’이 더 살아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화가였다면 후자를 택했을 것 같다. 술을 같이 마시는 사이는 아무래도 그런, 말하자면 나의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술이 압생트인 데다가 작품(‘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908)의 시기(벨 에포크)까지 감안하면 적당히 긴장을 풀고 있는 모습이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화가(장 베로, 1849~1935)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되레 이 두 사람이 커플이면서도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줄 때 배어 나오는 긴장감이 압생트와 힘겨루기를 할 수 있다 보았으리라. 그렇다면 남자보다 여자가 멀쩡한 게 다시 한번, ‘그림’이 된다.
술이 압생트, 그것도 20세기 초의 버전이 아니었더라면 그림 한 점을 놓고 등장인물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고민 또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압생트는 나름의 역사를 넘어 오명마저 지닌 술이다. 프랑스인 의사 피에르 오르디네어가 18세기 후반 스위스에서 개발해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입까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아니스와 회향, 약쑥 등을 주정에 더해 증류해 특유의 향으로도 유명한 압생트는 프랑스에서 특히 예술가의 술로 각광받았다. 이후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퍼져 어니스트 헤밍웨이(미국)나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등에게 영감의 원천 노릇을 했다. 특히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물을 더하면 향신료인 아니스의 기름 성분이 풀려 뿌옇게 변하는 백탁 현상이 벌어진다.
반 고흐도 그림으로 그릴 정도로 압생트가 인기를 누렸는데, 그에 비례해 악명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저렴한 술이라 특히 가난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는데, 이들의 말로가 대체로 비참했기에 압생트가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특히 원료인 약쑥의 성분 투우존(thujone)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팽배했으니 에밀 졸라 등의 지식인들이 압생트의 근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반 고흐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1887 / 그림. ⓒVan Gogh Museum,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실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지만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20세기 초반이었으니, 발 없는 말도 천리를 쌩쌩 잘만 달려갔다. 결국 1915년까지 압생트는 미국은 물론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돼 한동안 마실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체코에서 제조된 압생트가 소비를 공식 금지한 적 없는 영국으로 수입돼 팔리기 시작하면서 유행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아직도 미국은 투우존을 금지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미국보다 더 완화된 기준으로 규제를 풀었다. 국내에서는 투우존이 10mg 함유된 제품의 수입이 허가되어 살 수 있다. 바에서는 잔에 1온스(약 30밀리리터)의 압생트를 담고 특유의 긴 틈이 난 숟가락을 얹은 뒤 각설탕을 올린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각설탕을 녹여 단맛을 불어 넣고 압생트를 희석시키는 퍼포먼스를 즐길 수도 있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왔기에 처음 압생트를 마실 때 기대를 좀 했는데 솔직히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아, 이런 술로 그 많은 20세기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구나’ 정도의 소감이었달까? 하지만 베로의 작품을 통해 압생트를 다시 만나니 오랜만에 한 잔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작품 속 두 사람 가운데는 술을 더 맛있게 마실 것 같은 느낌인 남자와 함께 잔을 기울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