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의역하면 모든 고통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는 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를 쓰는가?
어떤 소설은 책장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체 작가님은 이 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하시려고 이렇게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하시나…….'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그럴 땐 조용히 메모지와 연필을 꺼낸다. 책을 읽으며 인물과 사건의 관계도를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적어 내려간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카오스 속으로 빠져버리거나 등장인물을 혼동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 속으로 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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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무한의 책>은 모처럼 감당할 수 있는 극한까지의 스토리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포스가 느껴지는 김희선 작가의 <무한의 책>은 거대한 미로의 꼬꼬무다. 서평에서는 ‘SF(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소설’ 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으로는 부족한 SUPER SF다.
이 이야기는 2015년의 경기도 용인과 2016년 미국의 트루데, 1958년의 경기도 용인의 세 시공간을 배경으로 소년과 스티브, 다람쥐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거대한 이야기의 퍼즐을 완성해간다. 여기에 신의 계시와 하늘로부터 신의 강림이라는 초현실적인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2015년, 용인 에버랜드에서 다람쥐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아로 발견된 소년은 자신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명진 고아원에서 왔다고 말한다. 소년을 인계한 용인 동부서 강승현 경장은 고무신을 신고 1957년도에 발행된 지폐를 지니고 있는 소년의 행색에 의아함을 느끼고, 소년이 말한 명진 보육원에 확인하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한편, 같은 해인 2015년. 미국의 쇠락한 도축업의 도시 트루데. 이미 3년 전 지구상의 모든 스마트폰에 무단으로 설치된 ‘계시’ 앱을 통해 예고된 대로 하늘로부터 신들이 떼를 지어 강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신들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추앙하던 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파충류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그리고 얼마 후인 2016년. 트루데에서 햄·소시지 영업사원 사원으로 일하던 청년 스티브는 강림한 신 보리스와 아르까지로부터 자신이 지구를 구원할 구원자로 정해져 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 후 어릴 적 ‘엘름가 1408번지 한국인 가족 몰살 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는 비극을 겪은 스티브는 과거의 어느 시점, ‘1958년의 용인’으로의 목숨을 건 시간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김희선 <무한의 책> 표지. / 사진 출처. 교보문고
작가와 편집자들은 이 거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자칫 독자들이 혼란스러울까 세심한 각주와 메시지에 따라 서체를 다르게 하는 친절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참으로 감사하다.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적어 내려가다 보니 내가 시험에 빠져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한 소설들이 떠오른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SF 장편 소설’ 주제와 제목에 매료되어 읽기 시작했으나 그 마지막 이야기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삼체'는 <삼체문제>, <암흑의 숲>, <사신의 영생>의 3부작. 문화대혁명 시기에 젊은 천체물리학자 예원제는 아버지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채 비밀 군사기지인 ‘홍안’으로 보내지고, 그녀는 인간 사회에 대한 환멸 끝에 외계 문명에 지구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 신호는 태양계에서 4.3광년 떨어진 심체 성계에 도달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거처를 찾던 삼체인들은 지구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기로 한다. 그들은 ‘소폰’이라는 초소형 양자 컴퓨터를 보내 인류의 과학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지구는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된다.
류츠신 <삼체> 3부작 표지. / 사진 출처. 교보문고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도 내게는 아직 제출하지 못한 숙제 같은 소설이다. <시녀 이야기>를 읽자마자 작가에게 빠져 그녀의 후속작에 과감하게 도전했지만,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사회에 환멸을 느낀 천재 과학자는 유전자 조작 등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 ‘환희 이상’이라는 약을 개발하게 된다. 이 약은 피임은 물론 최고의 쾌락과 젊음을 회복시키는 효과로 큰 인기를 끌지만, 인간의 몸에서 예상치 못한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부작용으로 인류는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살아내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그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행은 결국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작품을 위해 생명공학에서 해킹 및 비디오게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걸친 방대한 연구와 조사를 진행했다고 하니 사실을 바탕으로 그녀가 촘촘하게 써 내려갔을 그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흥분되지만 그래서 시작이 더 두렵기도 하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부드러운 펜과 종이를 준비하고 책의 첫 장을 넘겨야겠다. 작가님들은 언제나 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를 쓰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