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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공장이 '예술의 집'으로...훈데르트바서의 숨결 깃든 쿤스트하우스 빈
[arte] 김선경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빈에서 본
훈데르트바서의 예술 철학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건축
피부처럼 숨 쉬는 집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빈에서 본
훈데르트바서의 예술 철학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건축
피부처럼 숨 쉬는 집
독자는 혹시 집을 피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 말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멋지다. 세계적 건축가와 같은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집을 인간의 피부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피부가 다섯 겹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피부는 생물학적 피부이다. 당연한 말이다. 두 번째로는 옷을 꼽았다. 나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옷을 입은 채 생활하기 마련이니까. 세 번째 피부부터는 흥미로웠다. 그는 집을 세 번째 피부라고 말했다. 독특한 그의 주장은 이어졌다. 그는 정체성을 네 번째 피부로 들었고 지구를 다섯 번째 피부라고 보았다.
훈데르트바서 제작, <Men's Five Skins>, 1998년 출판된 'The Power of Art, Hundertwasser- The Painter-King with the Five Skins'에 수록된 이미지. / 사진. © 김선경
이런 독창적인 생각을 한 훈데르트바서는 19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Friedrich Stowasser)였다. 우리가 아는 그의 이름은 그가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는 알베르티나 미술관(Albertina Museum)에서 열린 발터 캠프만(Walter Kampmann, 1887~1945)과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전시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가 빈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Vienna)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열린 전시였다.
훗날에는 실레가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훈데르트바서는 프랑스 예술가 르네 브로(René Brô, 1930~1986)를 만났다. 이후 브로의 권유로 파리로 떠났다. 그곳에서 훈데르트바서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념하듯 그는 자신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로 프리덴슈라이 레겐탁 둔켈분트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이다.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이 이름은 ‘평화의 왕국, 비 오는 날, 어둡게 다채로운 색, 백 개의 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이름이다.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 사진출처. © KunstHausWien GmbH
훈데르트바서는 건축은 물론 회화와 디자인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그가 생전에 한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빈에 위치한 쿤스트하우스 빈(Kunsthaus Wien)이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쿤스트하우스란 독일어로 ‘예술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들으면 국립이나 시립 미술관일 것 같다. 하지만 쿤스트하우스 빈은 훈데르트바서가 자신의 예술 철학을 바탕으로 직접 설계한 개인 전시 공간이다. 그는 10년 넘게 마땅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가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이 미술관은 원래 19세기에 지은 가구 공장이었다. 1989년부터 2년 동안 공사를 한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길눈이 밝지 않은 사람도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빈의 단정한 유럽식 건물들 사이에서 쿤스트하우스 빈은 들쑥날쑥한 선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돋보인다. 건물 외벽의 검은 타일과 흰 타일은 불규칙하게 어울려 독특한 느낌을 준다.
쿤스트하우스 빈 건물 전경 / 사진출처. ©Sans Souci Wealth Management
훈데트르바서는 건축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건축물이 세 번째 피부라고 보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그는 건축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1967년에는 독일 뮌헨에서 나체로 “세 번째 피부에 대한 권리”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 연설에서 인간은 자신의 거주 공간을 통해 자아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같은 크기와 형태의 창문이 줄지어 있는 건물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나 ‘유대인 수용소’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획일적인 건물이 인간의 다양성과 자유를 억압한다고 본 것이다.
많은 건물이 비슷비슷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전까지는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훈데르트바서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주거 공간을 갖는 권리를 넘어 그 공간을 개성 있게 가꿀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가 기획한 쿤스트하우스 빈에는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창문이 공존한다. 건물 외벽을 자세히 보면 통일되지 않은 창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을 관통하는 다른 중요한 명제는 바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친환경 건축과 맞닿은 철학이다. 그는 나무를 ‘도시의 세입자’로 보았다. 나무도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집세를 내듯이 나무도 시원한 공기와 그림자 그리고 평온함을 도시에게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나무에게 도시를 임대해주는 이유는 단순히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게 진 빚의 일부라도 갚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훈데르트바서 <발칸반도의 이리나랜드(IRINALAND OVER THE BALKANS)>, Painted in Rome, November 14-16, 1969. 365 mm x 510 mm / 그림출처. © The Hundertwasser non-profit foundation
그의 철학은 쿤스트하우스 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건물 곳곳에 푸른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옥상에는 나무와 덩굴이 자라며 옥상정원을 꾸리고 있다. 1층에 자리한 카페 겸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무와 화초로 꾸며진 공간은 마치 작은 숲속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동료 화가인 요람 할렐(Joram Harel)은 이 공간을 ‘도심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1층과 2층에 걸쳐 그의 회화와 판화는 물론 테피스트리와 건축 모형 그리고 디자인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회화는 건물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사람 몸을 창문이나 지붕처럼 건축적 요소를 사용해 표현하기도 했다. 색감은 통통 튀고 반듯한 직선 대신 들쑥날쑥한 선들이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는 그의 건축물을 닮았다.
쿤스트하우스 카페 & 레스토랑 / 사진출처. © KunstHausWien GmbH
쿤스트하우스 빈 내부 전경 / 사진. © 김선경
훈데르트바서는 테피스트리와 편지 봉투 그리고 우표 디자인 같은 다양한 미술 분야에도 손을 댔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세계는 자유로운 개성과 조화를 향한 탐색이었다. 그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균형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삶!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삶의 진정한 균형이 아닐까? 이러한 철학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쿤스트하우스 빈은 그의 미술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독특한 장소이다.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
훗날에는 실레가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훈데르트바서는 프랑스 예술가 르네 브로(René Brô, 1930~1986)를 만났다. 이후 브로의 권유로 파리로 떠났다. 그곳에서 훈데르트바서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념하듯 그는 자신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로 프리덴슈라이 레겐탁 둔켈분트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이다.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이 이름은 ‘평화의 왕국, 비 오는 날, 어둡게 다채로운 색, 백 개의 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이름이다.
빈의 단정한 유럽식 건물들 사이에서 쿤스트하우스 빈은 들쑥날쑥한 선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돋보인다. 건물 외벽의 검은 타일과 흰 타일은 불규칙하게 어울려 독특한 느낌을 준다.
많은 건물이 비슷비슷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전까지는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훈데르트바서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주거 공간을 갖는 권리를 넘어 그 공간을 개성 있게 가꿀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가 기획한 쿤스트하우스 빈에는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창문이 공존한다. 건물 외벽을 자세히 보면 통일되지 않은 창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을 관통하는 다른 중요한 명제는 바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친환경 건축과 맞닿은 철학이다. 그는 나무를 ‘도시의 세입자’로 보았다. 나무도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집세를 내듯이 나무도 시원한 공기와 그림자 그리고 평온함을 도시에게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나무에게 도시를 임대해주는 이유는 단순히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게 진 빚의 일부라도 갚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1층과 2층에 걸쳐 그의 회화와 판화는 물론 테피스트리와 건축 모형 그리고 디자인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회화는 건물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사람 몸을 창문이나 지붕처럼 건축적 요소를 사용해 표현하기도 했다. 색감은 통통 튀고 반듯한 직선 대신 들쑥날쑥한 선들이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는 그의 건축물을 닮았다.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