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태양과 오페라의 나라라면, 독일은 숲과 가곡(Lied)의 나라다. 아리아가 들끓는 감정의 분출이라면 가곡은 내밀한 감성의 고백이다. 파올로 토스티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아드리아해가 바라보이는 작은 항구 오르토나(Ortona) 출신의 이 따스한 남쪽 나라 남자는 오직 가곡에만 천착해 약 350 곡을 남겼다. 오페라 작품은 하나도 손을 안 댔다. ‘이탈리아의 슈베르트’라 불릴 만하다.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Francesco Paolo Tosti, 1846~1916). 그는 이탈리아 낭만주의 가곡의 대표격이다. 칸초네(canzone) 혹은 로만차(romanza)가 가곡에 해당하는데 둘은 조금 다르다. 칸초네가 예술가곡⸱대중가요를 두루 아우른다면 좀 더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가곡은 로만차다. 특히 19세기~20세기 초에 부흥했던 이탈리안 살롱 송(salon song)을 로만차 혹은 로만체타(romanaetta)라고 부른다.
파올로 토스티(1846~1916)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토스티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70세 인생 중 38년을 영국서 보냈다. 이탈리아 왕실이 영국 빅토리아 왕비에게 그를 성악 교사로 추천한 게 발단. 이후 이탈리아의 선율미와 우아미를 결합한 수많은 영어 가곡을 작곡했다. 그는 영국서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으며 문화적으로도 훌륭히 융화했다. 토스 티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병약했으나 런던에서의 행복했던 생활은 그를 세련된 태도와 부드러운 화술을 가진 매력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런 캐릭터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감미롭고 섬세하며 감정선이 풍성하다. 급기야 이탈리아인으로는 드물게 Sir(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그대는 나의 인생 속으로 아침 햇살처럼 들어왔어요/내 영혼을 꽃과 빛으로 채워 주었죠/따뜻한 향기로 나를 감싸 안았답니다/내 마음속엔 영원히 살아 있는 노래가 울려 퍼졌어요/오 돌아와 줘요. 나의 이상이여, 내 사랑의 새벽이여/그대 없이 메마른 내 가슴은 다시 꽃피울 수 없답니다/돌아와 줘요, 나의 이상이여. 그리고 나의 꿈을 다시 밝혀줘요/정녕 그대는 내 삶의 봄이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연인을 이데아, 즉 이상으로 여기는 마음을 그린 노래로 토스티 선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1913-1995). 이탈리아 1세대 테너로 부드럽고 달콤한 음색, 탁월하고 미끈한 연결음이 시그니처다. 이른바 ‘주얼 톤(voce di perla)’, 진주알 같은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 소토 보체(sotto voce), ‘작고 속삭이듯 은밀하게 노래하라’는 성악 연주기법인데 탈리아비니가 바로 그 교본이다. 특히 1958년 그가 직접 출연한 영화 ‘물망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원제는 봄바람(vento di primavera)이었으나 극중에서 부른 데쿠르티스(De Curtis,1875~1937) 작곡 물망초(non ti scordar di me)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국내개봉에서 쓰였다. 1940~50년대 탈리아비니의 인기는 절정을 찍었다.
탈리아비니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1958년 독일-이탈리아 합작 영화 <물망초>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탈리아비니가 오케스트라 반주로 노래한 이데알레는 깔맞춤이다. 1964년 발표한 앨범에 수록돼있다. 사실 관현악 편성은 자칫 가곡에 있어 곡 자체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위험 요소다. 그러나 감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 음의 고조와 이완을 통해 색채감과 역동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되레 득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노래의 감정을 시각적·공간적으로 확장해 극적 효과의 깊이를 더해주는 게 감상자로서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 녹음은 특히 현(絃)과 관(管)이 조화롭게 서로를 감싸 안아 마치 꿈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탈리아비니의 맑고 유려한 목소리가 기막히게 조응하며 토스티 가곡이 지닌 낭만적 미감(美感)을 극대화한다.
이탈리아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 사진출처. 유튜브 캡처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