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한국 프로축구팀에 소속된 한 선수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 4세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북한을 조국으로 삼은 재일조선인 단체 ‘조총련’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프로선수로 살아가는 이유는 저같은 재일교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선학교’ 출신의 한국 국적자라는 정체성은 우리에게 다소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재일교포 사회 속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쓰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민족적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일본에는 약 60개의 조선학교가 존재하고,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민단이 운영하는 한국학교는 네 곳에 불과하다. 이런 격차는 과거 분단 이후 역사에서 기인한다.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했고, 재외동포 지원 정책도 체계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한국은 사실상 재일동포 사회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조선학교는 교포사회 안에서 민족성과 언어를 지키는 요람이 되었다.
특히 분단 전부터 일본에 머물러야 했던 재일동포들에게 조선학교를 선택하는 일은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학교에 자녀를 보내면 일본식 교육 속에서 언어와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념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낯선 땅에서 ‘우리 문화’와 ‘우리말’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를 택했다. 그 선택은 일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현실적 결정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지금도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김씨 부자의 초상화가 걸린 교실에서 우리말을 배운다. 이런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분단이라는 역사가 남긴 안타까운 초상처럼 보인다.
영화 '가족의 나라'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그런 경계의 삶을 꾸준히 기록해온 감독이 있다. 재일교포 출신의 양영희 감독이다. 특히 그녀가 연출한 극영화 〈가족의 나라〉는 재일교포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세대 간의 균열을, 배우 안도 사쿠라가 연기한 ‘리애’라는 인물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 〈가족의 나라〉는 1959년부터 20여년간 이어진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일본과 북한은 협약을 맺고,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대규모로 북한으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이끌려 귀국선을 탔다. 리애의 오빠 성호(이우라 아라타 분)도 그중 한 명이었다. 조총련 활동가였던 아버지는 당에 대한 충성심의 일환으로 아들을 북으로 보냈다. 그러나 고대하던 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빈곤과 감시 속에서 살아가던 성호는 결국 뇌종양을 앓게 되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 악화되어 치료를 명목으로 단 세 달간의 ‘특별귀국’을 허락받는다.
성호가 일본으로 돌아온 날, 수십 년 만의 재회는 기쁨보다 긴장에 가까웠다. 공항에서부터 그를 따라온 감시자 양 동지(양익준 분)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석에 앉아 “도쿄 바깥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리애의 아버지는 그 말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을 품어준 조국의 명령이라면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온 리애에게는 달갑지 않은 풍경이었다. 리애는 마음속의 모순을 삼킨 채, 오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만들려 애쓴다. 사실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불안과 연민이 함께 깔려 있다.
영화 '가족의 나라'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성호는 자신의 생각을 쉬이 내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리애는 그런 성호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결정이 남긴 무게를 평생 짊어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성호가 리애에게 조국을 위해 ‘공작원이 되어달라’고 운을 띄운다. 그 말 앞에서 리애는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다. 감시자인 양 동지를 찾아가 오빠에게 그런 말을 시키지 말고 직접 자신에게 말하라며, 당신 나라가 정말 싫다고 쏟아낸다. 이에 양동지는 짧은 침묵 끝에 담담히 답한다.
“동생분이 싫어하는 그 나라에서 오빠도 저도 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 말은 리애를 꺾는다. 자신의 오빠 성호에게 그 나라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며칠 뒤 성호는 이유도 모른 채 귀국 명령을 받는다. 리애는 이유를 묻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 세계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호는 치료를 끝마치지도 못한 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영화 '가족의 나라'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속 리애는 양영희 감독 자신의 그림자처럼 보인다. 재일인으로서 그녀는 앞선 세대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신념이 만들어낸 고통을 다음 세대로서 감내해야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국을 사랑했던 부모 세대의 신념을 이해하지만, 그 신념으로는 더 이상 지금의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만든 영화로 인해 북한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 사실은 그녀가 작품을 통해 재일인의 불편한 진실을 꾸준히 응시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며 2018년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레인보우 합창단’을 떠올렸다.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애국가를 불렀다. 서로 다른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그 장면은 우리 사회가 꿈꾸는 포용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의 무대 위에 만약 ‘이념’이라는 단어가 끼어든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같은 시선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영화 속 리애의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지금의 일본에도 남아있다. 어느새 재일교포 사회는 5세대까지 접어들었다. 조선학교는 예전만큼의 명맥을 잇지 못하고 많은 후손들이 일본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의 어느 교실에서는 우리말을 쓰며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삶을 단순히 이념의 틀 안에서만 보기 어렵다. 영화 속 리애가 그러했듯, 그들은 여전히 이념, 국적,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들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 삶이 온전히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