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지하철 안. 갓난아기가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댄다. 곧 한 남자가 아이의 엄마를 향해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고 아기를 달래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칠 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남자는 무심하게 자신의 역에서 내린다. 오늘은 8번 출구로 향한다. 왠지 인적이 없는 8번 출구 방향. 남자는 표지판을 따라가지만 출구는 나오지 않는다. 코너를 돌고 돌지만 반복되는 같은 길. 순간 출구 번호가 0으로 바뀌고, 남자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비디오 게임을 영화화한 <8번 출구>(카와무라 겐키)는 올해 칸 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린 섹션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출구를 찾아 나가야 하는 아케이드 게임의 형식과 호러를 합체한 <8번 출구>는 스크린 데일리와 버라이어티를 포함한 현지 언론으로부터 “일본을 넘어서 추앙받아야 할 작품(Exit 8 should achieve solid cult status beyond Japan)”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영화 '8번 출구' 스틸 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영화는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길을 잃은 남자”의 제목을 가진 첫 번째 파트의 이야기는 지하철로 출근 중인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자신의 목적지가 있는 8번 출구로 나가던 중 옛 연인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남자는 아이를 가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다. 전화는 통신 불안으로 끊겨버리고 남자는 출구로 향한다. 적잖이 놀란 남자에게 곧 더 큰 난제가 주어진다. 바로 출구를 찾는 일. 8번 출구라고 써 있던 표지판은 어느새 0번으로 바뀌고, 모든 상황이 출구로 향하는 코너를 돌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벽면에는 이 원치도 않는 게임에 대한 법칙이 적혀 있다. ‘이상 상황이 있으면 돌아갈 것’ 이제 남자는 8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 ‘이상 상황’을 의미하는 단서를 찾아야 한다.
영화 '8번 출구' 스틸 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사실상 제작자로서 더 큰 명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의 연출자 카와무라 겐키는 이번 작품 <8번 출구>로 각본가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칸 영화제에서의 호평뿐 아니라 올해 부국제에서도 가장 먼저 매진을 기록한 화제작 <8번 출구>는 과연 많은 이들의 극찬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지하철 역사 안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과 출구를 찾기 위해 동원되는 일상의 물체들은 그 보편성과 친숙함에 있어 더욱 꺼림칙한 극강의 공포를 만들어 낸다.
동시에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 중 하나인 벽면의 광고 포스터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현시대를 기표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성형외과 광고, 고수익 아르바이트 등 주인공이 단서를 위해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이 광고들은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현세대의 삶과 맞닿아 있는 가치들이다. 그는 일용직이고 그 역시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필요할 정도로 윤택하지 못하지만 그와 같은 혹은 그가 스쳐 간 수많은 사람은 그럼에도 ‘성형외과’를 선망할 정도로 보여지는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영화 '8번 출구' 스틸 컷. / 사진. ⓒ (주)미디어캐슬
<8번 출구>는 분명 ‘탈출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공포 스릴러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서 ‘존재의 가치’라는 더 무거운 이슈에 대해 역설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소년’은 그 중요한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다.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인한) 새로운 삶의 탄생을 선뜻 환영하지 못하는 남자(이는 그가 지하철 안에서 갓난아이와 그의 엄마가 한 남자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대목으로도 암시된다)와 그가 목숨을 걸고 구해낸 소년, 그리고 소년을 버리고 떠난 또 다른 남자의 끔찍한 최후는 무관심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 나아가 공감과 희생이 어떻게 미래를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화적 주제를 시사하는 설정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8번 출구>는 ‘길을 잃은 남자’의 일상적이지 않은 하루를 통해 일상과 삶의 중요성, 그리고 작은 삶에서라도 해야 하는 마땅한 일들을 영리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려낸 사회극이다. 과연 버라이어티지의 찬사처럼 ‘일본을 넘어 추앙받아야 할’ 작품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