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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비준 놓고 정쟁으로 4년 허비…'비자 협상' 골든타임 놓쳤다
한국, 美와 FTA 체결 때 전용 비자 왜 확보 못했나
호주, 美와 FTA 타결 1년 만에
특별비자 쿼터 1만500명 얻어내
韓은 정치권·노조·시민단체 대립
朴 정부조직개편에 '비자'는 뒷전
美선 '반이민 정서' 급속히 확산
한인 전문직 비자법안 계속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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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나 걸린 한·미 FTA 비준
2007년 한·미 FTA 협정을 주도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인터뷰와 저서 등에 따르면 한국은 협상을 통해 한국인 단기 무비자 입국(ESTA) 시행에 합의했고, 별도 전문직 비자를 도입하는 의회 입법을 미 행정부가 전폭 지원한다는 서한도 받아냈다.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과 농민·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의 FTA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며 국회 비준이 지연됐다. FTA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정부가 미 의회를 상대로 입법 청원 활동을 하기도 어려웠다. 이 틈을 타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요구했다.
협정에 서명한 뒤 4년이 지난 2011년에야 여당이 단독으로 비준안을 처리했다. 야당에선 한 의원이 국회의사당에 최루탄을 투척하고 난동을 벌이는 등 극렬히 반대했다. 비준안 통과 뒤에도 야권은 협정 폐기를 외치며 시민단체와 연대해 농성을 벌였고 미 의회 설득은 뒷전으로 밀렸다. 당시 재미동포 사회에서만 비자 확대를 요청했을 뿐 국내에선 수요가 적었던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 잃은 FTA 美 비자 업무
전문가들은 지금이 범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제조업 공장 설립에는 인력 파견이 필수’라는 논리를 내세워 미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할 적기라며 미국과의 FTA 협정 타결 후 1년 만에 특별 비자를 받아낸 호주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호주는 미국과 2004년 FTA 협정을 타결한 뒤 이듬해 바로 미 의회 입법으로 1만500명의 전문직 취업(E-3) 비자를 얻어냈다. 당시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자국 내 반전 여론에도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에 약 2000명의 전투병과 전투기·전함을 파병했다. 이를 통해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브로맨스’ 관계를 형성해 국익을 관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현일/배성수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