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술 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는 독특한 이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때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미술평론가로 전향했다. 그의 전환을 이끈 것은 예술 그 자체였다. 저서 <Art is Life>에서 살츠는 자신을 평론가로 이끌어준 작품으로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꼽는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1818 / © 2010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Martine Beck-Coppola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1818 / © 2010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Martine Beck-Coppola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예술이 인간의 고통과 정치적 현실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제리코가 묘사한 것은 단순한 익사자의 죽음이 아니라, 공동체가 절망 속에서 어떻게 붕괴하고 또 희망을 붙잡으려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 집단적 생존의 드라마를 포착한 이 작품은, 예술이 사회적 현실을 응축해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오늘날 국제 아트페어의 상황 역시 이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 시장의 배는 순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암초와 격랑 속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최근 들어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연이어 폐업을 선언하고 있다. LA와 도쿄에 지점을 두었던 블룸(BLUM)은 인터뷰에서 “페어 중심의 운영 방식에 대한 피로감”을 이유로 운영 종료를 발표했다. 뉴욕과 LA에서 활동하던 클리어링 갤러리(Clearing Gallery) 역시 “지속 가능한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문을 닫았다. 국내에 진출했던 페레스 프로젝트 역시 독일법원으로 부터 지급불능 판정을 받으며 파산 절차가 개시되었다.

갤러리들의 이런 후퇴는 아트페어의 존립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실제로 2024년 한 해 동안만 전 세계에서 31개의 아트페어가 사라졌고, 특히 유럽에서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 미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The Art Show는 주최 단체 ADAA(Art Dealers Association of America)가 2025년 행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시장 역시 흔들리고 있다.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를 지냈던 매그너스 란프루가 주도한 아트 어셈블리는 한때 아시아 시장의 허브를 자처했으나, 최근 타이페이 당다이(Taipei Dangdai) 개최를 취소했다. 그 외에도 도쿄 겐다이(Tokyo Gendai), 아트 SG(Art SG)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며 존속 가능성 자체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2026년 개최 중단을 안내중인 타이페이 당다이 웹사이트
2026년 개최 중단을 안내중인 타이페이 당다이 웹사이트
이런 와중에도 아트바젤과 프리즈는 세력을 더욱 확대하며 ‘제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춘추전국시대처럼 난립하던 아트페어 판도는, 이제 자본과 조직력을 갖춘 거대 페어의 손에 통합되고 있다.

아트바젤은 내년 카타르에서 새로운 아트페어 런칭을 발표하며 중동까지 영토를 넓히고 있다. 프리즈는 아모리쇼와 시카고 엑스포를 병합하며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은 골목상권을 잠식하는 대기업의 모습과도 닮았다. 압도적인 자본력과 조직력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장악할 수 있으나, 지나친 팽창은 균열과 반발을 낳을 위험이 있다.
아트바젤 카타르가 열리는 M7 in Doha / ⓒ Art Basel
아트바젤 카타르가 열리는 M7 in Doha / ⓒ Art Basel
이처럼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한국 미술 시장 한가운데에서 나란히 돛을 올린 것이 키아프(Kiaf)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다. 두 페어는 올해로 동시 개최 4년 차를 맞는다. 애초에 5년 계약으로 출발했으니, 반환점을 돈 셈이다. 그러나 남은 항로가 순풍일지 역풍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프리즈 서울의 출범은 명확히 아시아 거점 전략이었다. 아트바젤 홍콩의 독점을 견제하고, 한국을 통해 아시아 미술 시장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다소 어긋났다. 해외 컬렉터의 대규모 방문이나 아시아 주요 갤러리의 적극적 유입보다는, 오히려 한국 내부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참가 갤러리 역시 국제적 메이저보다는 한국 갤러리와 기존에 키아프에 참여하던 해외 갤러리의 프리즈 합류가 늘어났다. 그 결과 프리즈 서울은 국제전이라기보다 국내 지향적 성격이 강화된 ‘국지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프리즈는 ‘현지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외 갤러리의 참여 감소를 단순한 후퇴로 두기보다, 한국적 맥락에 맞춘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샤넬과 협력해 진행하는 영상 기반 프로젝트 ‘NOW & NEXT’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를 대표하는 작가와 차세대 작가를 연결해 세대 간 대화를 이끌어낸다. 또 아트선재센터와 국제갤러리 K2, (투게더)(투게더), 도산공간 등에서 열리는 Frieze Live는 한국 아트페어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퀴어 내러티브와 성 감수성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야광, 장영혜, 하지민, 곽소진, 루킴 등 젠더·퀴어 정체성을 탐구하는 11명의 차세대 작가가 무대에 오르며,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View of the
View of the "a fist is a fist is a fist - Ignition" performance by Ru Kim / ⓒRu Kim
작년 이화여대에서 진행되었던 Frieze Film은 올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협력해 서울시립미술관 옥상에서 개최된다. 오컬트, 신비주의, 영적 전통을 주제로 한 실험적 영상들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올해 처음 문을 여는 Frieze House Seoul은 런던의 No.9 Cork Street처럼 연중 내내 전시와 이벤트를 이어갈 수 있는 거점 공간이다. 단순한 4일짜리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시장 속에 장기적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Entrance to Frieze House Seoul, designed by Seoul-based architectural studio Samuso Hyoja, featuring a site-specific installation by Japanese architecture studio SANAA
Entrance to Frieze House Seoul, designed by Seoul-based architectural studio Samuso Hyoja, featuring a site-specific installation by Japanese architecture studio SANAA
키아프 역시 나름의 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동안은 급성장한 한국 미술 시장의 수요에 맞춰 코엑스 안팎의 임대 공간을 늘리고, 부스를 확대하며 양적 확장에 집중했다. 프리즈로 이탈한 갤러리의 공백은 국내 중소 갤러리로 채워 넣으면서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올해는 전략을 수정해, 단순한 규모 확대보다 내실을 다지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화랑협회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며 불황을 돌파하려는 전략을 내놓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Reverse Cabinet)’이다. 이는 일민미술관의 윤율리 선임학예사와 일본의 대안 공간 The 5th Floor 디렉터 이와타 토모야가 공동 기획한 전시로, 현대미술의 가치 체계와 자본 체계를 새롭게 환기한다. 단순한 장터를 넘어, 미술과 시장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Co-Curators of Kiaf SEOUL 2025 Special Exhibition《리버스 캐비닛》- 윤율리 선임학예사 (왼쪽), 이와타 토모야 디렉터 (오른쪽) / 제공. Kiaf SEOUL
Co-Curators of Kiaf SEOUL 2025 Special Exhibition《리버스 캐비닛》- 윤율리 선임학예사 (왼쪽), 이와타 토모야 디렉터 (오른쪽) / 제공. Kiaf SEOUL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그리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Kiaf SEOUL × KAMS × Frieze Seoul 토크 프로그램은 예술이 직면한 사회적·기술적·문화적 전환을 폭넓게 조망한다. 올해 주목할 만한 토크 프로그램은 ‘변화를 이끄는 동력: 서울 신진갤러리와 동시대 미술 생태계’이다. 엑스라지 갤러리 김재석 디렉터가 모더레이터를 맡고, 에이라운지 이승민, 상히읗 지혜진, 디스위켄드룸 김나형, 윌링앤딜링 김인선 대표 등이 참여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갤러리들이 맞닥뜨린 과제를 솔직히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한국 동시대 미술 생태계의 다음 장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매년 반복되는 관습적 아트페어는 점차 매력을 잃는다. 앞으로의 아트페어는 제국 건설이 아닌 지역 협력과 공동체 형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이익 독점보다 협업과 연대를 통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며, 시장 논리보다는 작가와 창작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띠오 갤러리의 김현민 디렉터는 “기여도가 없는 플랫폼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오늘날 아트페어의 본질적 과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키아프와 프리즈는 단순한 판매 플랫폼을 넘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공동체적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생존할 수 있다.

두 페어의 동반 항해는 2년이 남았다. 함께하는 항해를 연장할지 말지 선택에 문제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바람을 타고, 어떤 목적지를 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항해가 《메두사호의 뗏목》처럼 비극적 종말로 끝날지, 아니면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생존과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이 향후 10년 한국 미술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박준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