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사테와의 인연으로 탄생한 걸작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생상스의 음악은 ‘고전주의의 형식미'와 ‘낭만주의의 감수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바흐와 모차르트에서 이어지는 명확하고 균형 잡힌 형식을 중시했지만, 동시에 프랑스 낭만주의 특유의 우아한 색채감과 유려한 선율미를 잃지 않았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나단조> 역시 이러한 생상스의 미학이 그대로 녹아든 작품으로, 전통적인 세 악장 구조(빠른 악장-느린 악장-빠른 악장) 속에서 바이올린의 섬세한 기교와 표현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각 악장은 서로 다른 분위기와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기적이고 완결된 흐름을 이룬다.
2악장 Andatino quasi allegretto는 바르카롤레(barcarolle)풍의 느린 악장이다. (바르카롤레는 베네치아 곤돌라 뱃사공들의 노래에서 유래한 양식으로, 8분의 6박자의 리듬을 사용해 부드럽게 움직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악장은 1,3악장에 비해 작은 오케스트라 편성을 갖추고 있으며, 목관악기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평화롭고 서정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비교적 큰 동요 없이 잔잔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독주자의 하모닉스와 클라리넷의 선율이 유니즌(unison)으로 연주되면서 고요하게 마무리된다.
3악장 Molto moderato e maestoso - Allegro non troppo는 레치타티보(recitativo)를 연상시키는, 자유롭고 서사적인 바이올린의 독주로 문을 연다. 오로지 바이올린 소리로만 무대가 채워지는 첫 순간은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장중하게 합류하고, 생동감 넘치는 리드미컬한 주제로 넘어간다. 열정이 응축된 흐름 안에서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선율이 등장하기도 하고, 폭넓은 음역, 다양한 형태의 리듬이 활용되어 다채로운 색채를 만들어낸다. 눈부신 기교와 힘찬 에너지가 가득한 채, 협주곡은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생상스는 1908년 9월, 피아니스트 카롤린 드 세르(Caroline de serres, 1843~1913)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 바이올린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사라사테 덕분이다. 그는 한 시대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 작품을 세계 곳곳에서 연주했다.” (“If my violin music was so successful, I owe it to Sarasate, because he was for a time the most prominent violinist in the world and he played my works, which were still unknown, everywhere.”)
생상스와 사라사테는 단순히 작곡가와 연주자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음악적 세계를 확장시킨 동반자였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다면,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이 조금은 다른 음악으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인연과 음악이 어우러져, 두 사람의 이름과 작품들이 지금도 함께 기억된다.
이준화 바이올리니스트